[위키트리 광주전남취재본부 노해섭 기자] 전남 고흥군이 추진 중인 186억 원 규모의 ‘가축분뇨 공동자원화(고체연료화)’ 사업을 둘러싸고, 사업자 선정의 정당성을 놓고 지자체·축협과 탈락업체들 간 갈등이 정면충돌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탈락한 업체들은 “심사 과정 전반이 공정성을 상실한 총체적 부실”이라고 주장하며, 우선협상대상자와의 계약을 멈춰 달라는 내용의 가처분을 법원에 제기한 상태다.
◆186억 원 ‘가축분뇨 에너지화’ 시범사업…출발부터 잡음
문제가 된 사업은 2024년 농림축산식품부 공모에 선정된 고흥군의 ‘가축분뇨 공동자원화’ 프로젝트다.
고흥군은 도덕면 신양리 2964번지 일원에 축산 농가에서 발생하는 가축분뇨를 수거·처리하고, 이를 고체 연료로 전환하는 시설을 건립해 축산 폐기물 처리와 에너지 자립을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총 사업비는 국비·도비·군비·민간 부담을 합쳐 186억 원 수준이다.
고흥군은 2023년 11월 16~24일 사업 참여자를 모집했고, 12월 서류 심사와 프레젠테이션 평가, 현장 확인 절차를 거쳐 같은 해 12월 31일 최종 사업자를 선정했다. 그러나 결과 발표 직후 탈락업체들이 “심사 과정과 결과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논란이 불붙었다.
◆탈락업체들 “이해충돌부터 점수 공개 거부까지…원천 무효 수준”
사업 공모에 참여했던 여러 업체들은 1순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업체의 ‘적격성’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며 가처분 신청과 별도로 진정서까지 제출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들이 지적하는 핵심 쟁점은 △심사위원 이해충돌 의혹 △심사위원 선정의 불투명성 △현장 평가 절차 축소·무력화 △세부 평가 결과 비공개 등이다.
◆“사전 설명회 심사위원이 본 공모에선 특정 업체 편에 서”
탈락업체들이 가장 민감하게 문제 삼는 대목은 이해충돌 의혹이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된 ㈜규원테크 측 설계 담당자로 참여한 오 모 씨가, 정작 공모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2024년 10월 고흥축협이 연 ‘사전 설명회’에서 이미 심사위원 자격으로 나왔다는 주장이다.
참여업체들은 “사전 설명회는 사업 방향과 기준이 공유되는 자리인데, 그 자리에 심사위원으로 앉았던 인물이 이후 특정 업체와 한 팀을 꾸려 본 사업에 뛰어든 것은 명백한 이해충돌”이라며 “경쟁의 전제인 공정성이 근본적으로 훼손됐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한 문제 제기는 고흥군에 공식 진정서 형태로도 전달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전국 공모라더니, 막판에 ‘전남 거주’ 조건…회의록도 없다”
심사위원단을 꾸리는 과정에서도 ‘깜깜이’ 논란이 일고 있다. 고흥군은 애초 전국을 대상으로 심사위원을 공개 모집해 75명의 지원을 받았지만, 실제 5명을 최종 선발하는 단계에서 공고에 없던 ‘전남 거주자’ 조건이 뒤늦게 적용됐다는 의혹이다.
탈락업체들은 “고흥축협 조합장이 일방적으로 지역 제한을 요구했고, 그에 따라 심사위원 구성이 왜곡됐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절차의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국민신문고를 통해 회의록 공개를 요구했으나, 고흥군은 “내부 검토 사항으로 비공개 대상이며, 관련 회의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회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체들은 이를 두고 “심사위원 선정부터가 기록 없이 진행된 전형적인 밀실 행정”이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가장 중요한 현장평가, 인원 빠진 채 요식행위로 진행”
기술력과 사업 수행 능력을 직접 검증해야 할 현장 확인 절차도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애초 계획에 따르면 심사위원 5명과 고흥군 관계자 1명, 고흥축협 측 1명 등 총 7명이 참여해 각 후보 업체의 현장을 직접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탈락업체들에 따르면 고흥축협 측이 “현장 평가는 감점 요소만 있을 뿐 꼭 할 필요가 없다”며 폐지를 제안했고, 업체들의 강한 반발로 겨우 일정이 다시 잡히는 우여곡절 끝에 평가가 진행됐지만 실제 참석 인원은 크게 줄었다. 어떤 업체 현장에는 심사위원 2명만, 또 다른 업체 현장에는 3명만 방문해 사실상 반쪽짜리 실사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업체들은 “186억 원이 투입되는 대형 기술 사업의 ‘핵심 절차’를 축소하고 무력화한 것”이라며 “기술역량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파일럿급 설비 실적, 기준에도 안 맞는데 1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규원테크의 기술·실적 검증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해당 업체는 하루 6톤 처리 규모의 고속발효건조기 납품실적이 있다고 제안서에 기재했지만, 탈락업체들은 이를 “파일럿(시험용) 설비 수준으로 판단된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공고문에는 국내외 실적을 요구하되 파일럿 시설은 제외하도록 명시되어 있었는데, 정작 선정된 업체의 실적은 현장 실사도 없이 가동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며 “공고 기준에 미달하는 업체를 1순위로 올린 만큼 이번 선정은 원천적으로 인정될 수 없다”고 반발한다.
◆“점수·항목별 득점 전면 비공개…결과만 덜렁 발표”
고흥군이 발표한 최종 결과에는 1~5순위 업체 명단만 담겼다. 심사위원별 세부 점수, 평가 항목별 득점 현황 등 공정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 자료는 일절 공개되지 않았다.
참여업체들은 “이해충돌 의혹, 심사위원 선정 과정, 현장평가 축소 등 수많은 의문이 제기된 상황에서 세부 결과까지 감춘 것은 특정 업체를 밀어주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며 선정 결과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고흥군·축협 “공고문대로 진행…탈락업체의 불만 제기일 뿐”
논란의 중심에 선 고흥군과 고흥축협은 “절차상 아무런 하자가 없다”며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이뉴스투데이에 따르면 고흥군 축산정책과 관계자는 “모든 절차를 공고문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했다”며 “가처분 신청에 적시된 주장은 낙선한 업체들이 결과에 불만을 품고 제기하는 하소연에 가깝다”고 반박했다. 그는 직접 현장 실사에도 참여했다고 밝히며, 심사 과정이 요식행위였다는 주장에 선을 그었다.
또한 “공모에 참여한 업체들은 평가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며, 세부 평가 결과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동의한 상태에서 참가했다”며 “그럼에도 뒤늦게 평가 과정을 문제 삼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고흥축협 김종암 조합장 역시 “가축분뇨 자원화 사업의 공모 및 심사 전 과정은 고흥군이 주관했으며, 축협은 그 결과에 따라 계약을 체결했을 뿐”이라며 “고흥군이 절차를 투명하게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조합장은 1순위 업체인 규원테크와는 이미 지난 1월 12일 계약을 체결했으며, 현재 제기된 가처분에 대한 법적 대응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사전 설명회에 참여한 오 모 씨 관련 사안은 고흥축협이 관여한 사안이 아니다”라며, “축협 측 요구로 심사위원을 전남 거주자로 제한했다는 주장 역시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법원 판단에 따라 장기 표류 가능성도
이번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 고흥군과 고흥축협이 이미 체결한 계약의 효력이 제한되거나 사업자 선정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럴 경우, 에너지 자립형 순환경제 모델로 기대를 모았던 가축분뇨 자원화 시범사업은 착수 시점이 상당 기간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에서 제기된다.
한편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순히 특정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갈등을 넘어, 지자체 대형 공모사업 전반의 투명성과 심사 시스템의 신뢰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법원의 1차 판단 결과에 따라 고흥군 행정, 지역 축산업계, 환경·에너지 정책 추진 속도 등 여러 분야에 파장이 미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