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위키트리 최학봉 선임기자] 아침 출근길, 우리가 일상을 시작하는 그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119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전국에서 출동한 구급차는 약 332만 건. 단순 계산으로는 10초도 채 되지 않는 간격마다 한 대씩 출동한 셈이다. 이제 119는 ‘가끔 부르는 번호’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 인프라가 되었다.
문제는 이 출동 수요가 앞으로도 줄어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인구 고령화로 심정지·심혈관·뇌혈관 질환 환자는 늘고 있고, 기후 변화는 폭염과 한파, 예측 불가능한 재난을 일상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인력 중심 대응 체계만으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지금, 소방의 현장에서는 조용하지만 중요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차세대 119 구급·상황관리 체계다.
최근 5년간 구급 출동 건수는 팬데믹 이후 급격히 증가해 연간 350만 건에 육박한 적도 있다. 2024년 다소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330만 건을 넘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2020년과 비교해 약 2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인력 증원만으로는 이 증가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점에서, 이제는 ‘더 많은 사람’이 아니라 ‘더 똑똑한 시스템’이 필요해졌다.
차세대 119 통합시스템의 핵심은 AI가 상황관리의 일부를 담당한다는 데 있다. 신고가 몰리는 시간대, AI 음성인식 기술은 신고 내용을 자동으로 분석해 긴급도를 분류한다. 단순 문의나 비긴급 상담은 AI 콜봇이 처리하고, 상황요원은 생명이 위급한 신고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2024년 한 해 동안 119구급상황관리센터에서 처리된 의료 상담만 해도 약 83만 건.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을 AI가 맡게 된다면, 골든타임 확보를 위한 여력은 훨씬 커질 수 있다.
AI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구급 출동은 무작위로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 오전 9~10시에 출동이 가장 많고, 전체 출동의 약 60% 이상이 주거지에서 발생한다. AI는 이러한 수년치 데이터를 학습해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과 시간을 예측하고, 구급차를 사전에 그 주변으로 이동시키는 ‘선제적 배치’를 가능하게 한다. 신고가 접수된 뒤 출동하는 방식에서, 사고 가능성에 먼저 대응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다.
특히 중증환자 대응에서 AI의 효과는 더욱 분명하다. 심정지·심혈관·뇌혈관·중증외상으로 분류되는 4대 중증 환자는 분초가 생사를 가른다. 5G 기반 AI 스마트 구급체계는 구급차 안에서 촬영된 환자의 영상과 생체 정보를 실시간으로 병원에 전송하고, AI가 이를 분석해 의료진이 환자 도착 전에 필요한 처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구급차와 병원을 하나의 치료 공간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개념이다.
물론 기술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AI가 아무리 정교해도, 현장에서 이를 사용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설명 가능한 AI’다. 왜 이 구급차가 출동해야 하는지, 왜 이 병원이 선택됐는지를 대원이 이해할 수 있어야 기술은 신뢰를 얻는다. AI는 판단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판단을 돕는 조력자여야 한다.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지역 특성이다. 대도시와 농어촌이 혼재된 도농 복합 지역에서는 전국 단위의 동일한 알고리즘보다, 지역 실정에 맞춘 맞춤형 AI가 필요하다. 현장의 경험과 데이터가 결합될 때, 기술은 비로소 살아 움직이게 된다.
매년 330만 건이 넘는 구급 출동 데이터는 그 자체로 소방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이제는 이 데이터를 단순히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측과 정책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현장에서 작성된 구급활동일지가 AI의 학습 자료가 되고, 고도화된 AI 분석 결과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을 때, 119는 한 단계 더 진화할 수 있다.
AI 기반 차세대 119 통합시스템은 화려한 미래 기술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도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는 구급차의 도착 시간을 단 몇 분이라도 앞당기기 위한, 매우 현실적인 변화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현장을 지키는 소방대원이 있고, 그 뒤에는 데이터를 통해 보이지 않는 위험을 먼저 읽어내는 AI가 있다. 기술은 차갑지만, 그 목적만큼은 분명히 따뜻하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 그 단 하나다.
- 김해동부소방서 소방위 이채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