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 뚫는 법부터 재테크까지”~광주시 광산구, ‘세금 사용설명서’를 동네 청년 손에 쥐여주다

2026-01-14 02:33

청년‧이주민‧청소년, 예산 편성에 직접 참여…‘나를 위한 정책’ 스스로 만든다

[위키트리 광주전남취재본부 노해섭 기자]전등 가는 법부터 막힌 변기 뚫는 법, 재테크 비법까지.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진짜 독립 기술’을 가르쳐주는 특별한 수업이 광주시 광산구에서 열려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놀랍게도 이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시킨 주체는 행정 공무원이 아닌, 바로 동네 청년들 자신이었다.

광산구가 지난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주민참여예산학교를 운영했다.
광산구가 지난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주민참여예산학교를 운영했다.

이는 민선 8기 광산구가 주민참여예산제를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정책의 진짜 수요자인 청년, 이주민, 청소년의 손에 돌려준 결과물이란 평가다. 세금을 어디에 쓸지 직접 결정하게 하자, 행정의 손길이 닿지 않던 ‘사각지대’를 메우는 기발하고 실용적인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 만족도 85% 대박…‘독립은 처음이라’ 프로젝트

지난해 광산구 청년들을 열광시킨 ‘청년, 독립은 처음이라’ 프로젝트가 대표적 성공 사례다. 이제 막 부모님 곁을 떠나 홀로서기를 시작한 청년 208명이 모여 공구 사용법을 배우고, 정리수납 꿀팁을 공유하며, 맛있는 집밥을 함께 만들어 먹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전수를 넘어, 낯선 독립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고 건강한 관계망을 형성하는 ‘사회적 안전망’ 역할까지 해냈다.

참여자 만족도는 무려 85.1%. “집수리같이 실생활에 바로 써먹을 기술을 알려줘서 최고였다”, “이런 프로그램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후기가 쏟아졌다. 이 사업은 청년들이 직접 청년총회를 통해 제안하고, 주민참여예산으로 실현시킨 결과물이다.

■ 이주민이 직접 만든 ‘한국어 교실’과 ‘마을 축제’

이러한 변화는 다른 계층에서도 감지된다. 2024년, 지역 이주민들을 위한 맞춤형 한국어 교육 ‘배움 교실’과 선·이주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마을 축제 ‘달아실아리랑’이 성공적으로 열렸다. 이 역시 주민참여예산위원회의 문턱을 낮추고 이주민 위원들의 참여를 대폭 확대한 결과, 그들의 목소리가 예산에 직접 반영된 것이다.

■ 이제는 ‘청소년’이 주인공…요리대회부터 진로체험까지

광산구의 ‘맞춤형 재정 민주주의’는 올해 더욱 확대된다. 특히 청소년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 특성을 반영해 ‘청소년 주민참여예산’ 사업이 첫선을 보인다. 청소년들이 직접 제안하고 선정한 ▲청소년판 흑백요리사 ‘요리경연대회’ ▲전통시장 빈 점포를 활용한 ‘진로체험장’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학습공간 지원’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예산을 배정받아 올해 실행될 예정이다.

박병규 광산구청장은 “과거에는 행정이 주도했지만, 이제는 청년, 이주민 등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해 예산의 쓰임새를 결정하는 체계가 잡히고 있다”며 “이는 행정의 빈틈을 메우고, 세금이 가장 필요한 곳에 효과적으로 쓰이는 ‘진짜 재정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home 노해섭 기자 noga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