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으로 약값 지원했더니…성관계로 옮는 '이 질병' 확진자 줄었다

2026-01-13 20:52

프렙 예방요법과 정책 전환, HIV 감염 차단의 새로운 전략

국내에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한국인 수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600명대로 줄었다.

수치만 놓고 보면 단순한 통계 변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정책과 인식, 그리고 접근 방식의 변화가 겹쳐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내국인 HIV 신규 감염자는 657명으로 집계됐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800명대를 오르내리던 수치가 600명대로 내려온 것이다. 2005년 이후 한 번도 깨지지 않았던 선이 다시 그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특히 2022년 이후 3년 연속 감소세가 이어졌다는 점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HIV 감염자와 에이즈 환자가 같은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HIV는 바이러스 감염 상태를 의미하고, 에이즈는 면역력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거나 기회 감염이 발생했을 때 진단되는 단계다. 치료를 제때 받지 않으면 HIV 감염자는 에이즈로 진행될 수 있지만, 조기 치료와 관리가 이뤄지면 평생 에이즈 단계로 넘어가지 않고 생활할 수도 있다. 이번 통계는 이 두 집단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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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는 신규 감염자 감소의 배경으로 예방 중심 전략을 꼽는다. 그중 핵심은 이른바 ‘프렙’으로 불리는 노출 전 예방요법이다. HIV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이 예방약을 복용해 바이러스가 체내에 들어오더라도 증식하지 못하게 차단하는 방식이다. 하루 한 알 복용만으로도 감염 위험을 90% 이상 낮춘다는 임상 결과가 축적돼 있다.

지난해 질병관리청은 이 프렙 지원 시범사업을 전국 17개 시도로 확대했다. HIV 감염인의 파트너를 비롯해 남성과 성접촉하는 남성, 트랜스젠더 여성, 유흥업소 종사자 등 감염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집단을 대상으로 검사부터 처방 전 검사, 약값 일부까지 지원하는 구조다. 횟수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문턱을 낮췄다.

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어든 점 역시 영향을 미쳤다. 개인이 부담할 경우 월 40만 원 안팎에 이르던 예방약 비용이 시범사업을 통해 6만 원대로 낮아지면서 접근성이 크게 개선됐다. 감염 이후 치료에 집중하던 방식에서, 감염 이전 예방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셈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면 접촉이 늘어난 상황에서도 신규 감염자가 줄었다는 점은 이 변화의 효과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아직 완치가 없는 질환이지만,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확실히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체계적인 관리와 예방이 병행된다면 신규 감염자 수를 사실상 0명에 가깝게 낮추는 것도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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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러한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중장기 계획도 내놓았다. 2024년부터 2028년까지를 대상으로 한 2차 에이즈 예방관리대책에서는 프렙 확대와 대국민 홍보 강화를 통해 2030년까지 신규 감염자를 2023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전국 에이즈예방센터와 상담센터를 중심으로 예방 교육과 조기 검사, 감염인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민간 차원의 움직임도 시작됐다. 지난해 의료진과 환자단체, 학계, 산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가 출범해 HIV를 둘러싼 차별과 편견을 줄이기 위한 활동에 나섰다. 감염 여부보다 관리와 공존에 초점을 맞추자는 흐름이다.

질병관리청은 올해 프렙 지원사업 참여 목표 인원을 1000명으로 설정하고, 외국인 감염자 관리 방안도 함께 보완할 계획이다. 복약 관리와 수요 분석을 거쳐 장기적으로는 예방약의 급여화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 HIV 감염과 에이즈의 차이...성관계를 하면 무조건 감염될까?

‘HIV 감염자와 피임도구 없이 성관계를 하면 반드시 감염되느냐’는 점은 항상 초미의 관심사다. 결론부터 말하면 반드시 감염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감염 위험은 분명히 존재하며, 반복될수록 위험은 누적된다. HIV는 혈액, 정액, 질 분비물, 모유 등을 통해 전파되며, 콘돔 없이 성관계를 할 경우 바이러스가 체내로 유입될 가능성이 생긴다. 특히 상처나 점막 손상이 있을 경우 감염 확률은 더 높아진다.

HIV 감염 이후 바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 2주에서 6주 사이 일부 감염자에게서 감기와 비슷한 급성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발열, 인후통, 근육통, 림프절 종창, 발진 등이 대표적이며 대부분 일시적으로 사라진다. 이 시기를 지나면 수년간 특별한 증상이 없는 잠복기가 이어질 수 있다.

이 잠복기가 HIV 감염의 가장 위험한 지점이다. 본인은 건강하다고 느끼지만, 체내에서는 바이러스가 서서히 면역세포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평균 8년에서 10년 사이 면역 기능이 크게 저하되고, 폐렴이나 결핵, 곰팡이 감염 같은 기회감염이 나타나며 에이즈 단계로 진행된다. 이 시점에는 일상생활이 어려워질 정도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다.

다행히 현재는 HIV를 조기에 발견하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바이러스 수치를 극도로 낮출 수 있고, 이 경우 타인에게 전파될 가능성도 매우 낮아진다. 실제로 치료를 통해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 수준으로 유지되면 성관계를 통해 전파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축적돼 있다. 중요한 것은 조기 검사와 치료, 그리고 상대방에게 알려 전파를 막는 태도다.

home 위키헬스 기자 wikihealth75@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