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2주 차에 607만 대작을 꺾었다.” “평점은 9.15.” 숫자만 놓고 보면 이미 결론은 난 셈이다. 초반부터 물량 공세로 판을 흔드는 흥행 공식이 아니라, 관람 이후 평가와 추천이 관객을 다시 움직인 ‘입소문 역주행’이 주말 박스오피스 판도를 뒤집었다.

12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주말(9일~11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작품은 멜로 영화 ‘만약에 우리’(감독 김도영)다. 주말 관객 수는 34만 273명, 누적 관객 수는 104만 6423명으로 집계됐다. 개봉 12일째 1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손익분기점(110만 명)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이번 1위가 더 크게 읽히는 이유는 ‘상대’ 때문이다. 같은 기간 2위는 ‘아바타: 불과 재’(감독 제임스 카메론)로 31만 6264명을 모아 누적 607만 9648명을 기록했다. 누적 스케일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진 ‘607만 대작’을 주말 성적에서 제치며 정상에 선 것이다.

3위는 ‘주토피아2’(감독 바이론 하워드·재러드 부시)로 13만 3645명, 누적 831만 3928명이다. 4위는 ‘신의 악단’(감독 김형협)으로 8만 9865명, 누적 26만 439명. 5위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감독 김혜영)로 6만 5744명, 누적 77만 9299명이다.
예매율은 아직 ‘아바타: 불과 재’가 앞선다. 오전 8시 50분 기준 실시간 예매율 순위는 ‘아바타: 불과 재’(21.2%), ‘트맨’(13.5%), ‘만약에 우리’(13.3%)로 집계됐다. 그럼에도 주말 1위를 만든 힘이 예매율이 아니라 ‘관람 이후의 반응’에서 나왔다는 점이 이 작품의 흥행 성격을 설명한다.

실제로 ‘만약에 우리’는 초반부터 “큰 광고로 밀어붙인 영화”라기보다 “보고 나서 추천이 붙는 영화”에 가까웠다. 네이버 실관람객 평점은 12일 기준 9.15점. 역주행을 가속하는 데 필요한 신뢰 지표를 확보했다는 의미다. 관객 반응도 비슷한 결로 모인다. “한국 정서로 풀리니 여운이 더 깊다”, “왜 이 조합(구교환·문가영)인지 납득된다”, “현실적인 로맨스라 더 아프고 더 오래 남는다” 같은 반응이 입소문을 밀어 올렸다.
흥행의 전조는 개봉 전에도 있었다. 이 작품은 개봉일인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7시 기준 사전 예매량 11만 8389장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로맨스·멜로 장르에서 동시기 최고 사전 예매량 기록으로 언급된 ‘헤어질 결심’(2022)의 11만 6000장대보다 높은 수치다. 개봉 당일 오전 예매량이 1만 8417장이었던 ‘건축학개론’, 3만 1371장이었던 ‘너의 결혼식’과 비교하면 출발선 자체가 훨씬 높았다. 결과적으로 ‘만약에 우리’는 사실상 올해 공개된 한국 영화 중 가장 먼저 100만 관객 고지를 밟게 됐다.

작품의 골자는 단순하다. 뜨겁게 사랑했던 은호와 정원이 10년 만에 우연히 재회하며, 기억의 흔적을 다시 꺼내는 현실 공감 연애 영화다. 구교환, 문가영이 주연을 맡았다. 다만 ‘단순함’이 곧 ‘쉬움’은 아니다. 관객의 마음을 붙잡은 지점은 리메이크의 방향성이었다.
원작은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2018)로, 중국 최고 스타 저우동위가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만약에 우리’는 원작의 감수성을 빌리되, 국내 관객이 즉각 체감하는 현실 문제를 전면으로 끌어올렸다. 돈도 집도 없는 지방 청년의 서울살이, 취업난, 치솟는 집값 같은 압박이 연애 감정과 결합하면서 사랑 이야기가 곧 생존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원작 분위기 복제’가 아니라 정서를 국내 현실로 옮겨 심은 현지화에 가깝다.
연출은 김도영 감독이 맡았다. ‘82년생 김지영’(2019)을 만든 감독이라는 이력도 관심을 키운 요인이다. 김 감독은 원작이 남긴 여운의 이유를 고민했고, 인물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성장하는 방향으로 감정을 확장하는 데 무게를 뒀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과거의 후회가 현재를 잠식하는 비극으로만 남지 않고, 상처를 통과해 “그래도 살아내는” 결의 멜로로 잔상을 바꾸려는 선택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추천’을 만들었다. 구교환은 이은호라는 인물로 설렘과 후회, 재회의 반가움과 씁쓸함을 촘촘히 쌓는다. 시간의 점프가 있는 멜로에서 가장 어려운 감정의 결을, 한 인물 안에서 설득력 있게 이어 붙인다.
문가영은 정원을 통해 고단한 서울살이 속에서도 꿈을 놓지 않는 청춘에서, 보다 단단해진 현재의 자신으로 나아가는 궤적을 자연스럽게 그린다. 유쾌함과 애틋함 사이를 오가면서도 감정의 중심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호흡이 영화의 밀도를 끌어올린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결국 이 작품의 흥행은 “큰 광고로 끌어올린 1위”가 아니라 “평가가 만든 1위”에 가깝다. 주말 34만 관객, 누적 104만 6423명, 평점 9.15, 손익분기점 110만 명 가시권. 숫자는 역주행의 궤적을 설명하고, 관객 반응은 그 이유를 증명한다. ‘만약에 우리’는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며 러닝타임은 115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