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정판 필리버스터라고 할 만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결심 공판이 9일 오전 9시 20분에 시작해 다음날 0시 11분에야 끝났다. 15시간 가까이 이어진 재판이었지만 당초 계획했던 구형과 최후진술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따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형이 오는 13일로 미뤄졌다.
재판이 이렇게까지 길어진 건 피고인 측의 서류증거 조사 때문이었다. 특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 변호인단이 점심시간과 휴정 시간을 포함해 무려 10시간 30분을 서증조사에 쏟아부었다. 재판 진도는 좀처럼 나가지 않았다.
재판부도 처음엔 참았다. 오후 5시 40분쯤 되자 김 전 장관 측 서증조사를 중단시키고 다른 피고인 측 조사를 먼저 진행한 뒤 다시 김 전 장관 측 조사를 재개하는 초유의 조치를 취했다. 그럼에도 김 전 장관 측은 이후에도 1시간 30분가량 서증조사를 계속했다.
재판정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피고인 측이 추가 기일을 잡기 위한 지연 작전을 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김 전 장관 측이 증거조사 자료 복사본이 부족하다며 구두변론으로 진행하겠다고 하자 특검팀은 "전날 시나리오부터 제출했는데 준비를 해왔어야 한다"고 반발했다. 지귀연 부장판사가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징징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특검팀이 김 전 장관 측 권우현 변호사에게 "읽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속도만 빨리해달라"고 재촉하자 권 변호사는 "제가 혀가 짧아 빨리하면 혀가 꼬인다"고 받아쳤다. 동료 변호인은 "천천히 하라"며 거들었다.
재판이 오후 9시 50분까지 이어지자 윤 전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저녁 식사도 못 한 상태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다. 구속 수감된 피고인들은 체력적으로 굉장히 지쳐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8명의 피고인이 다시 한자리에 모이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이날 재판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김 전 장관 측을 향해 "전반적으로 겹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시간이 길어진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측 위현석 변호사가 "다른 피고인 변호인들이 서증조사를 마치고 저희가 할 때쯤이면 새벽 1시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윤 전 대통령 변론을 비몽사몽인 상황에서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항변하자 재판부는 결국 추가 기일 지정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다음 기일에는 무조건 끝내야 한다. 그 이후는 없다. 언제가 되든 늦게까지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13일 공판에서는 윤 전 대통령 측 서증조사와 특검팀의 최종 의견 및 구형, 피고인 8명의 최후 진술이 진행된다. 윤 전 대통령 측이 서증조사에 6시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힌 데다 특검팀도 구형 의견에 2~3시간이 필요하다고 한 만큼 13일 재판 역시 장시간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결심 공판이 지연돼 구형과 최후진술을 위한 추가 기일을 지정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법조계에서는 재판부가 피고인 측에 최대한의 발언 기회를 주려던 선의를 일부 변호인이 악용해 재판 지연 전략을 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방어권 행사와 동떨어진 발언이나 반복 발언을 단호하게 제지하지 못한 재판장의 소송 지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반발이 거세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페이스북에서 "사형 구형을 애타게 기다려 온 국민을 또 우롱하고 분노케 한 결정"이라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알뜰하게 침대 재판을 시전한 재판부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진성준 의원도 역시 페이스북에서 "내란 잔당들의 법정 필리버스터에 재판부가 굴복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며 "이러니 내란전담재판부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은 재판 내내 눈을 완전히 감은 채 고개를 꾸벅이며 조는 모습을 보였다. 오후 재판에서도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하며 집중력을 잃은 모습이 이어졌다. 가끔 옆자리에 앉은 윤갑근 변호사와 살짝 미소를 띤 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