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시장의 신뢰를 생명으로 삼아야 할 대형 금융사 메리츠금융그룹의 고위 임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머니를 채우는 ‘정보 사냥꾼’으로 전락했다. 일반 투자자들이 공개된 정보만으로 투자 판단을 내리는 동안 회사 안에선 핵심 임원들이 정보를 몰래 빼돌려 막대한 차익을 챙기고 있었다. 검찰 수사망이 메리츠금융그룹의 핵심 인사인 김용범 부회장으로까지 확대되면서 메리츠화재의 미공개정보 이용 사건 수사가 그룹 최상단으로 뻗쳤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는 전날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김 부회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이번 사건으로 김 부회장을 대상으로 강제 수사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9월 다른 혐의자들의 사무실과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수사 개시 1년여 만에 그룹의 실세로 불리는 김 부회장까지 수사선상에 오른 것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개인 일탈이 아닐 수 있다는 검찰의 판단을 보여준다.
메리츠화재 임직원들은 2022년 11월 메리츠금융지주가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한다는 합병 계획 발표 전 해당 정보를 미리 입수했다. 이들은 정보가 시장에 공개되기 전 가족 명의 계좌까지 동원해 주식을 매수했다. 합병 발표 이후 메리츠금융지주를 비롯한 관련주의 주가가 급등하자 보유 주식을 매도해 수억원대의 시세차익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회사의 중대 경영 정보를 개인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한 전형적인 내부자 거래였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7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메리츠화재 이범진 전 사장과 상무급 임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내부의 핵심 정보를 사적인 이익 수단으로 악용한 이들의 행위는 금융회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직업윤리를 저버린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사 임직원에게 요구되는 정보 관리 의무와 투자자 보호 책임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다.
김 부회장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지면서 검찰 수사는 그룹 최상단으로 확대됐다. 검찰로선 실무진의 일탈을 넘어 경영진 차원의 조직적 관여나 묵인이 있었는지를 밝히려는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1월 21일 합병 계획 발표 당시 기자회견에 나섰던 김 부회장의 측근들이 같은 시기 미공개정보로 부당이득을 챙긴 정황이 드러나면서 내부통제 시스템의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전 사장은 김 부회장이 2015년 메리츠화재 대표로 취임할 때 함께 입사해 경영지원실장 등 핵심 보직을 거치며 그룹 내에서 승승장구했다. 김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 회사의 가장 중요한 정보를 이용해 불법 거래에 나섰다는 점에서 메리츠 내부의 윤리 의식이 얼마나 무너져 있었는지 드러난다. 메리츠화재가 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전 사장의 최근 3년간 보수 총액은 연 25억원 수준으로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이미 막대한 연봉을 받고 있던 고위 임원이 수억원의 부당 이득을 위해 회사와 투자자들을 배신한 것이다.
김 부회장이 회사에서 받은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김 부회장은 2024년 스톡옵션 총 99만2161주를 모두 행사해 814억400만원을 수령했다. 2014년 메리츠금융지주 최고경영자로 취임한 김 부회장은 2015년 3월 보통주 123만2000주의 스톡옵션을 부여받았다. 이후 자사주 소각 등으로 행사 가능 수량이 조정됐고, 2024년 말 행사할 수 있는 스톡옵션을 모두 행사했다. 여기에 급여 7억8900만원, 상여 10억3600만원, 기타근로소득 3000만원 등을 받아 총 832억7000만원의 보수를 수령했다.
합병 발표 이튿날인 2022년 11월 22일 메리츠금융지주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고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도 급등했다. 시장이 합병 소식에 환호하는 동안 해당 정보를 미리 알고 있던 내부자들은 주가 상승을 기회 삼아 부당한 이익을 챙겼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악용한 전형적인 불공정 거래다.
이 전 사장을 포함한 혐의자들은 합병 발표를 주도한 핵심 인사들이었다. 김 부회장이 기자회견에서 합병의 의미를 설명하고 주주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동안 그의 측근들은 뒤에서 몰래 주식을 사모으고 있었단 점에서 조직 전체의 윤리 의식 붕괴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메리츠금융그룹을 이끄는 조정호 회장도 이번 사태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그룹 최고 경영자로서 계열사 임직원들의 불법 행위를 막지 못한 것은 지배구조와 내부통제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한 결과라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최고 경영자의 측근이 회사 최대 기밀을 이용해 불법 거래를 저질렀음에도 사전에 막지 못한 것은 메리츠금융그룹의 지배구조가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준다.
자본시장법 위반이 인정되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위반 행위로 얻은 이익의 3~5배에 상당하는 벌금에 처해진다. 금융권 안팎에서 화려한 실적 뒤에 가려진 윤리 의식 부재가 결국 투자자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