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고속도로 사고 수습 현장을 덮쳐 경찰관과 견인차 기사를 숨지게 한 30대 SUV 운전자가 사고 당시 크루즈 컨트롤 기능을 켜고 달린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전북 고창경찰서는 이날 사고 차량의 사고기록장치 EDR 분석 결과와 운전자 진술 등을 종합했을 때 운전자 A 씨가 크루즈 기능을 작동한 상태로 주행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다만 사고 원인은 졸음운전으로 보고 있으며 크루즈 기능이 사고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고는 지난 4일 오전 1시 23분께 전북 고창군을 지나는 서해안고속도로 상행선 고창 나들목 인근에서 발생했다. 당시 현장에는 앞서 일어난 다른 교통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순찰차와 구급차 견인차 등 긴급 차량 여러 대가 경광등을 켜고 정차해 있었다.
A 씨가 몰던 SUV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사고 수습 현장으로 그대로 진입했고 수습 중이던 전북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12지구대 소속 이승철 경정 1명과 견인차 기사 1명을 들이받았다. 이 경정과 견인차 기사는 현장에서 숨지고 A 씨 차량에 동승한 가족과 다른 차량 운전자 등 9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졸음운전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과속 등 다른 위반 정황은 현재까지 뚜렷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크루즈 기능 작동 여부에 주목한 배경도 있다. 현장에는 긴급 차량이 불을 밝히고 있었는데도 A 씨 차량이 감속 없이 달려온 점을 근거로 크루즈를 켠 채 잠든 가능성을 들여다봤다. 다만 크루즈 컨트롤은 설정한 속도를 유지해 주행을 돕는 기능인 만큼 사고와의 인과관계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 경찰 판단이다.
크루즈 주행 도중 발생한 사고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강원 인제군 서울양양고속도로 터널 구간에서 크루즈 기능으로 주행하던 차량이 사고 수습 중이던 소방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한국도로공사 등의 통계를 종합하면 202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SCC 관련 사고는 모두 28건이며 이 사고로 21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순직한 이승철 경정의 영결식은 지난 6일 전북경찰청에서 전북경찰청장으로 엄수됐다. 정부는 고인에게 녹조근정훈장을 추서했고 경찰청은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고인과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은 위험한 현장에서도 먼저 나서던 경찰관이었다고 기억했다.
◈ 주행 보조일 뿐인데…사고 나면 치명적인 크루즈 기능
크루즈 컨트롤이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을 둘러싼 안전 경고도 다시 주목된다. 고속도로 관리 당국은 해당 기능이 어디까지나 ‘운전자 보조 장치’일 뿐, 전방 주시나 돌발 상황 대응을 대신해 주는 자동주행 기술은 아니라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해 왔다.
속도와 차간 거리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 주긴 하지만 졸음이나 부주의가 겹칠 경우 오히려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속도로에서는 주행 보조 기능을 켠 상태에서 전방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사고로 이어지는 사례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대응 요령 역시 중요하다. 한국도로공사는 2차 사고를 막기 위한 행동 수칙으로 이른바 ‘비트밖스’를 안내하고 있다.
사고나 고장으로 차량이 멈췄다면 가장 먼저 비상등을 켜 뒤따르는 차량에 위험을 알리고, 트렁크를 열어 시인성을 높인 뒤 가드레일 밖 등 안전한 장소로 신속히 대피해야 한다.
이후 차량 안에 머무르지 말고 안전한 곳에서 신고와 구조 요청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당국은 “고속도로에서는 차량에 남아 있는 것 자체가 가장 위험한 행동”이라며 “주행 보조 기능을 맹신하지 말고, 사고 발생 시에는 즉각 대피가 생명을 지키는 핵심”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