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식탁의 단골 메뉴인 김장 김치가 시간이 지나면서 과하게 익으면 먹기 거북할 정도로 신맛이 강해진다. 이렇게 신맛이 강해진 묵은지는 생으로 먹기에는 부담스럽지만, 여기에 조금만 재료를 더하면 밥도둑 메뉴가 된다.

그중에서도 멸치를 넣고 뭉근하게 끓여내는 ‘멸치 묵은지 지짐’이 인기 있는 조리 방식 중 하나다. 묵은지의 강한 산미는 중화시키고 멸치의 감칠맛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1. 묵은지의 과도한 산미 제거
먼저 묵은지의 과한 신 맛을 줄이기 위해 깨끗한 물에 여러 번 헹군다. 김치 양념에 포함된 고춧가루, 다진 마늘, 젓갈 등은 이미 장기간 숙성되어 제 역할을 다했기에, 고온에서 오래 끓일 경우 오히려 국물을 텁텁하게 만들거나 탄 맛을 낼 수 있다.

헹군 묵은지는 찬물에 일정 시간 담가두어야 한다. 바로 삼투압 현상을 이용해 배추 조직 깊숙이 박힌 염분과 강한 신맛 성분을 밖으로 배출시키는 과정이다. 신맛이 유독 강하다면 담금 물에 설탕을 소량 첨가하거나 양파 껍질을 함께 넣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렇게 만든 묵은지는 물기를 가볍게 짜서 준비한다.
2. 국물용 멸치의 선택과 비린내 제거
묵은지 지짐의 핵심인 멸치는 크기가 크고 내장이 제거된 ‘국물용 대멸치’를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다. 멸치에는 강력한 감칠맛 성분이 들어 있는데, 묵은지의 식물성 단백질과 궁합이 좋다.
그 전에 멸치를 바로 넣기보다는 마른 팬에 먼저 볶는 과정이 필요하다. 멸치 표면의 수분과 함께 비린내를 날려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팬에 약한 불로 볶으면 멸치가 바삭해지며 고소한 향이 올라오는데, 이때 생기는 마이야르 반응이 지짐의 풍미를 한층 깊게 만든다. 멸치 머리는 국물 맛을 내는 데 유용하므로 그대로 사용하되, 쓴맛을 내는 검은 내장은 반드시 제거해야 깔끔한 맛을 유지할 수 있다.
3. 감칠맛 나는 지짐이 조리 과정
이제 냄비 바닥에 손질해 둔 멸치를 골고루 깔아준다. 그 위로 깨끗이 씻어 묵은지를 차곡차곡 올린다. 이때 일반 생수 대신 쌀뜨물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쌀뜨물은 국물에 적당한 무게감과 감칠맛을 더해주고, 멸치 특유의 비린 향을 잡아주며 묵은지의 거친 식감을 한결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요리의 맛을 결정짓는 핵심은 기름이다. 다양한 기름이 있지만 묵은지 요리에는 들기름이 가장 잘 어울린다. 들기름 특유의 고소한 향이 묵은지와 조화롭게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냄비의 열기가 올라오기 시작할 때 들기름을 넉넉하게 둘러주면, 기름이 묵은지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배추의 식감을 매끈하게 해준다. 또한 들기름은 묵은지의 강한 신맛을 부드럽게 덮어주는 역할을 하여 전체적인 맛의 균형을 잡아준다.
이 요리에서는 불조절이 가장 중요하다. 센 불에서 빠르게 끓여내기보다는 중약불에서 은근하게 오랜 시간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불이 너무 세면 묵은지의 겉면만 익고 정작 속까지는 맛이 배지 않은 채 국물만 졸아들기 때문이다. 뚜껑을 닫고 뭉근하게 끓여내면 멸치에서 우러나온 깊은 감칠맛이 묵은지 속까지 천천히 스며든다. 국물이 자작하게 줄어들 때까지 충분히 기다리면 묵은지가 투명하게 변하면서, 씹는 맛은 살아있지만 입안에서는 부드럽게 넘어가는 상태가 된다.
4. 간의 포인트는?
묵은지 자체에 염분이 남아 있으므로 추가적인 소금 간은 줄여야 한다. 대신 된장을 소량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된장의 콩 단백질은 멸치의 단백질과 결합하여 국물의 무게감을 더하며, 된장 특유의 향은 묵은지의 군내를 잡는 데 탁월하다.

마지막으로 대파와 다진 마늘을 넣는다. 대파의 흰 부분은 단맛을 더해주고, 마늘은 전체적인 맛의 조화를 이끈다. 만약 국물이 완성된 시점에도 신맛이 남아 있다면 올리고당이나 설탕을 마지막에 살짝 추가하여 맛의 균형을 맞춘다. 조리가 끝난 후 바로 먹는 것보다 잠시 상온에서 식히는 과정을 거치면 삼투압 현상이 다시 일어나 배추 속까지 양념이 완전히 배어들어 더욱 깊은 맛을 낸다.
5. 멸치 묵은지 지짐의 보관 방법
보관 시에는 완전히 식힌 후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한다. 이 요리는 차갑게 먹어도 맛의 변질이 적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멸치의 맛이 배추에 더 깊게 배어들어 풍미가 높아진다. 다시 데울 때는 수분이 부족할 수 있으므로 물을 조금 추가하여 약불에서 서서히 데우는 것이 포인트다.
이처럼 멸치 묵은지 지짐은 버려질 수 있는 신 김치를 재탄생시킨 레시피다. 쌀뜨물의 전분, 멸치의 감칠맛, 들기름의 풍미가 조화를 이루어 완성되는 이 요리는 겨울철 부족하기 쉬운 영양을 채워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