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업계가 10년 넘게 기다려온 '꿈의 배터리'가 실험실을 벗어나 도로 위로 나온다. 핀란드 배터리 스타트업 도넛 랩이 세계 최초로 양산형 전고체 배터리 출시를 선언했다. 항상 '5년 뒤면 나온다'던 전고체 배터리가 과연 진짜인지에 세상의 관심이 쏠린다. 
도넛 랩이 6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CES 2026을 하루 앞두고 기가와트시급 생산 능력을 갖춘 전고체 배터리를 공개했다. 이 배터리는 이미 핀란드 전기 오토바이 제조사 버지 모터사이클의 2026년형 전 모델에 탑재돼 1분기 중 고객에게 인도된다.
도넛 랩이 발표한 배터리 성능은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를 압도한다. 에너지 밀도는 400Wh/kg으로 시판 중인 최고급 리튬이온 배터리(250~300Wh/kg)보다 월등히 높다. 테슬라 배터리와 비교하면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충전 속도는 더 놀랍다. 5분 만에 완충이 가능하며, 일반적인 배터리처럼 80%까지만 충전하는 제약도 없다. 0%에서 100%까지 안전하게 충전하고 방전할 수 있다. 버지 모터사이클의 TS Pro 모델은 10분 미만 충전으로 최대 300km를 달릴 수 있다. 회사 측은 충전 시간을 의도적으로 늘렸다며 "라이더가 커피를 즐길 시간을 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내구성도 획기적이다. 10만 회 이상 충전해도 용량 손실이 거의 없다. 일반 배터리 수명이 5000회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20배에 달한다. 마르코 레티마키 도넛 랩 CEO는 "오토바이 수명 내내 쓸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극한 환경에서도 성능을 유지한다. 영하 30도에서도 용량의 99% 이상을 보존하고, 영상 100도를 넘는 고온에서도 발화나 성능 저하 없이 99% 이상 용량을 유지한다. 액체 전해질이 없어 화재 위험이 근본적으로 차단된다. 열폭주 연쇄반응도, 수지상 결정 형성도 일어나지 않는다.
도넛 랩의 주장 중 가장 파격적인 부분은 소재다. 회사는 리튬이나 코발트 같은 희귀 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풍부하고 저렴한 재료"만으로 배터리를 만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재료 성분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는 특정 국가의 자원 무기화나 공급망 독점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제조 공정이 단순해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생산 비용이 더 저렴하다고 주장한다.
버지 모터사이클의 TS Pro는 이 배터리를 탑재한 첫 번째 양산 차량이다. 표준 배터리(20.2kWh)는 주행거리 350km를, 대용량 배터리(33.3kWh)는 최대 595km를 제공한다. 배터리 공간은 기존과 동일하지만 주행거리가 크게 늘었다. 무게도 245kg에서 230kg으로 줄었다. 허블리스(hubless) 디자인의 도넛 모터 2.0과 결합해 1000Nm의 토크를 내며 0-100km/h 가속을 3.5초에 달성한다.
하지만 워낙 획기적인 성능 탓에 일각에선 의구심도 제기된다. 전기차 전문 매체 일렉트렉은 "너무 좋아서 사실이 아닌 것처럼 들린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오토바이 전문 매체 라이드어파트도 "버지가 이전에 런던 도심에서 시속 19km로 주행해 193마일 주행거리를 달성했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며 실제 주행 조건에서의 성능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도넛 랩은 자신감을 드러낸다. 레티마키 CEO는 "작년 CES에서 도넛 모터를 처음 선보였을 때도 많은 사람이 의심했지만 실제 도로에서 세계 기록을 세우는 걸 보고 믿었다"며 "이번 전고체 배터리도 마찬가지다. 완전히 테스트하고 검증한 뒤 이미 차량에 탑재해 작동하는 걸 확인한 후에야 발표했다"고 강조했다.
도넛 랩은 오토바이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확장한다. WATT 일렉트릭 비히클스와 함께 도넛 모터와 배터리를 통합한 초경량 EV 스케이트보드 플랫폼을 개발 중이며, 아홀라 그룹과의 합작사 코바 파워는 도넛 배터리를 장착한 스마트 트레일러로 디젤 소비를 54%까지 줄인다. 국방 업체 ESOX 그룹과는 극한 환경용 군사 플랫폼 개발도 진행 중이다.
업계에선 발표 내용이 사실이라면 도넛 랩이 전고체 배터리 경쟁에 새로운 국면을 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경쟁사들이 빨라도 2027년 양산을 목표로 하는 상황에서 도넛 랩이 지금 당장 생산 가능한 전고체 배터리를 내놓은 건 그만큼 주목을 모은다.
도넛 랩의 전고체 배터리 실물은 6일 CES 2026에서 공개된다. 1분기 버지 오토바이가 실제 도로를 달리면서 성능이 검증될 예정이다. 업계는 이번 발표가 전고체 배터리 시대의 진짜 시작인지, 아니면 또 하나의 과장된 약속인지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