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ESG 기준원과 스튜어드십 코드 발전위원회는 금융위원회, 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와 함께 29일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스튜어드십 코드 내실화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2016년 12월 민간 자율 규범으로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는 자산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가 타인의 자금을 관리하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마련된 원칙이다. 도입 이후 올해 12월까지 국민연금 등 4개 연기금과 63개 자산운용사를 포함해 총 249개 기관이 참여하며 외연을 확장해 왔다.

수치상으로는 성과가 나타났다. 민간 기관투자자의 반대 의결권 행사 안건 비율은 2016년 3월 1.84%에서 2024년 3월 4.59%로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의결권 행사 대상 기업 수도 2016년 636개에서 2024년 873개로 늘어나는 등 주주권 행사가 과거보다 활발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점검 체계가 부재하고 보고서 공시가 체계적이지 않아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번 방안의 핵심은 스튜어드십 코드 발전위원회가 최종 검토하고 의결하는 이행 점검 절차의 신설이다. 참여 기관은 수탁자 책임 정책 마련, 이해 상충 관리, 투자 대상 회사 주기적 점검, 의결권 행사 내역 공개 등 12개 항목에 대해 자체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를 실무진이 점검한 뒤 위원회가 최종적으로 이행 여부를 확정한다. 다만 독립적인 민간 중심 위원회를 둔 연기금은 자체 검토 결과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점검 과정에서의 객관성 확보를 위해 한국ESG기준원은 정보 차단벽(Chinese Wall)을 설치하기로 했다. 코드 지원 조직을 의결권 자문 등 다른 부서와 공간적으로 분리하고 인적·정보 교류를 차단해 이해상충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다는 계획이다. 점검 대상은 규모와 파급효과를 고려해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2026년 자산운용사와 연기금 68개사를 시작으로 2027년 PEF 운용사와 보험사, 2028년 증권사와 은행, 2029년에는 벤처캐피털과 서비스 기관을 포함한 249개 전 기관을 점검권에 넣는다.
공시 체계도 대폭 개편된다. 현재는 개별 참여 기관이 자사 홈페이지에 보고서를 올리는 방식이라 홈페이지가 없는 소규모 기관은 확인이 어렵고 기관 간 비교도 쉽지 않았다. 앞으로는 모든 참여 기관의 보고서를 스튜어드십 코드 홈페이지에 통합 게시한다. 특히 항목별 이행 여부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종합보고서를 매년 12월 공개해 미이행 사항을 시장이 즉각 확인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우수 기관에 대해서는 모범사례를 발굴하고 점검 결과를 자산 소유자인 연기금과 공유해 시장 중심의 환류 체계를 구축한다.

글로벌 기준에 맞춘 코드 개정도 2026년 상반기 중 추진된다. 제정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원칙에 환경(E)과 사회(S) 요소를 명시적으로 포함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지배구조(G) 중심의 활동에 치중했으나, 앞으로는 수탁자 책임 이행 시 ESG 전반을 고려하도록 유도한다. 적용 자산군 역시 상장주식 위주에서 채권, 부동산, 인프라, 비상장주식 등으로 넓힌 영국과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다변화할 계획이다. 투자 대상 기업에 대한 주주 활동뿐만 아니라 투자 대상을 선정하는 단계부터 수탁자 책임을 이행하도록 범위를 확장한다.
이번 대책은 자본시장 혁신을 위해 기관투자자의 역할을 강조해 온 정부의 국정과제와 궤를 같이한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등 관계 부처는 이번 내실화 방안이 기관투자자들이 단순히 코드에 가입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으로 주주 책임을 이행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ESG기준원 측은 이행 점검 항목이 업권별 특성에 따라 조정될 수 있으며, 전문성 확보를 위한 인력 마련 여부 등도 주요 점검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