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도 갚지 마세요… '연 60%' 넘는 고금리 빚, 합법적으로 0원 만든다

2025-12-30 16:03

불법사금융 피해, 한 번 신고로 일괄 처리되다

불법사금융 피해자가 금융감독원이나 경찰 등 기관에 한 번만 신고하면 불법 추심 중단부터 계좌 차단, 법률 지원, 수사 의뢰까지 일괄적으로 처리되는 원스톱 시스템이 가동된다. 그동안 피해자들이 복잡한 신고 절차와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고를 주저하다 피해를 키웠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피해 구제의 전 과정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다. 이번 대책은 지난 7월 시행된 개정 대부업법의 후속 조치로, 법적 근거가 마련된 반사회적 대부계약 무효화를 실제 현장에서 집행할 수단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단순 자료 사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단순 자료 사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불법 자금줄을 끊는 속도다. 앞으로 금감원에 피해 신고가 접수되거나 제보를 통해 불법사금융 이용이 확인된 계좌는 즉시 금융거래가 제한된다. 은행 등 금융사는 해당 계좌 명의인에 대해 강화된 고객 확인(EDD) 절차를 밟아야 하며, 명의인이 이를 거부하거나 검증되지 않을 경우 거래는 종료된다. 통상 불법사금융 조직이 타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이용한다는 점을 역이용한 것이다. 불법 행위자의 주거래 계좌뿐만 아니라 범죄 수익이 흘러 들어간 것으로 의심되는 다른 계좌들까지 동결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자금 회전 자체를 봉쇄해 조직 운영을 무력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디지털 추심 수단에 대한 대응 수위도 높아졌다. 최근 불법 추심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텔레그램이나 SNS를 통해 지인의 연락처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금융당국은 불법 추심에 이용된 SNS 계정뿐만 아니라 해당 계정에 접속하기 위해 사용된 전화번호까지 추적해 차단하기로 했다. SNS 계정 자체를 없애더라도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 활동하는 '메뚜기식' 영업을 막기 위해 접속 경로인 전화번호를 불법 정보로 간주해 통신망에서 퇴출하는 방식이다.

피해자들이 벼랑 끝에서 불법사금융을 찾지 않도록 정책금융의 문턱도 낮췄다. 연체자나 소득 증빙이 어려운 금융 소외 계층을 위한 불법사금융 예방 대출의 금리가 대폭 인하된다. 내년 1월 2일부터 현재 연 15.9%인 금리를 12.5%로 내리고, 대출금을 성실하게 전액 상환하면 납부한 이자의 절반을 돌려준다. 이를 적용하면 실질 금리 부담은 연 6.3% 수준으로 떨어진다.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는 실질 금리 5% 수준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고금리 늪에 빠진 취약계층에게 실질적인 탈출구를 제공하려는 조치다.

피해자 지원체계 구조도 / 금융위원회
피해자 지원체계 구조도 / 금융위원회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렌탈 채권 추심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였다. 정수기나 가전제품 렌탈료가 연체되었을 때 발생하는 채권을 매입해 추심하는 업자들도 앞으로는 금융위원회에 등록해야 한다. 그동안 일부 업자들이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사들여 막무가내로 빚 독촉을 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서류를 근거로 돈을 뜯어내는 사례가 빈번했다. 정부는 등록 의무화와 함께 추심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부당한 독촉 행위를 엄격히 감시할 계획이다.

이번 대책은 지난 7월부터 시행된 개정 대부업법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집행력 확보 차원이다. 개정법은 연 60%를 초과하는 살인적인 고금리 계약을 반사회적 행위로 규정하고 원금과 이자를 모두 무효로 하도록 명시했다. 법적으로 갚을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꺼리거나 불법 업자의 협박에 시달려왔다. 이에 금감원은 반사회적 대부계약에 대해 무효 확인서를 발급해 주고, 경찰 및 법률구조공단과 연계해 피해자가 법적 보호막 안에서 안전하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언론 보도 기준도 새로 마련됐다. 자극적인 범죄 수법을 지나치게 상세히 묘사해 모방 범죄를 유발하거나 피해자의 신상 정보가 노출돼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 등 유관 기관은 불법사금융 피해 예방을 위한 보도 기준을 제정하고 협약을 맺었다. 단순한 사건 전달을 넘어 피해자가 이용할 수 있는 구제 제도와 신고 채널을 기사에 명시하도록 권고하여 언론이 범죄 예방의 한 축을 담당하도록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조치들이 현장에서 즉각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9월부터 금감원이 불법 추심업자에게 경고 문자를 발송하는 시범 운영을 한 결과, 추심이 중단되거나 채무가 종결되는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정부는 내년 1분기 중 현행 법규 내에서 가능한 조치를 우선 시행하고,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은 국회와 협의해 조속히 입법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불법사금융은 서민의 삶을 파괴하는 경제적 살인 행위인 만큼, 정부가 끝까지 추적해 뿌리 뽑겠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

home 조희준 기자 chojoon@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