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정부와 이재명 정부를 관통하는 '총리 인선’ 뒷이야기가 29일 나란히 불거지며 정치권 안팎의 입방아를 자극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집권 첫 총리로 직전 진보 정권의 김부겸 전 총리를 점찍었다는 전언과,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초기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에게 총리직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동시에 나오면서다. 정권과 진영을 가로지른 ‘통합형 인선 구상’이 뒤늦게 수면 위로 떠오르자, 정치권에선 "결국 성사되진 않았지만, 각 정부가 출범 당시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윤 전 대통령과 소통 관계였던 신평 변호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윤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베푼 저녁 모임에 참석했더니 그가 '초대 총리로 민주당 소속 김부겸 전 총리를 임명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속 말을 하더라"고 밝혔다. 이어 "김 전 총리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라'는 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신 변호사는 김 전 총리의 경북고 1년 선배다.
신 변호사는 이후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김 전 총리를 만났을 때의 대화도 전했다. 김 전 총리가 “형님, 제 혼자 좋다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당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그 후에야 제가 움직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신 변호사는 이런 사정으로 김 전 총리 영입 논의가 진척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 비화는 신 변호사가 국민의힘 이혜훈 전 의원의 기획예산처 장관 지명 수락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신 변호사는 "(당의 동의를 총리직 수락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김 전 총리와 달리 국민의힘에 어떠한 동의도 구하지 않은 이 전 의원 처신은 의아하고, 비릿한 배신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고 적었다.
김 전 총리는 문재인 정부에서 총리를 지냈고, 민주당 소속이지만 상대적으로 중도·통합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받아 왔다.
신 변호사의 글이 사실이라면 당시 윤 전 대통령은 협치와 국정 안정을 고려해 ‘야권 출신 총리’ 카드를 진지하게 검토했지만, 소속 당 동의 문제 등 현실적인 제약 앞에서 인선으로 이어지진 못한 셈이다.
신 변호사의 게시글이 올라온 지 몇 시간 뒤엔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 초 유승민 전 의원을 총리로 영입하려 했다는 보도가 나와 보수 진영이 술렁였다. 유 전 의원이 최근 지명된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와 함께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에 이름을 올렸다는 내용이다. 이 후보자는 정계 입문 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했는데, 당시 그의 사수가 유 전 의원이다.
국민일보는 유 전 의원 측 관계자를 인용해 “이 대통령이 다른 사람을 통해 몇 차례 총리직 제안을 해 왔는데 유 전 의원이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정리가 됐다”고 전했다. 유 전 의원은 “그런 전화할 거면 앞으로 연락하지 마시라”고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인사는 “당시 김민석 총리 지명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유 전 의원을 유력 검토했던 것으로 안다"며 "보수 유력 인사를 정권 핵심부에 제대로 끌고 들어오려는 구상이었고, 영입 시도가 상당히 집요했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이 보수 진영 3선 의원 출신인 유승민계 권오을 보훈부 장관을 발탁했을 때도 유 전 의원을 영입하기 위한 발판 아니냐는 해석이 있었다.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다. 그러나 유 전 의원 측근은 같은 매체에 “대선 전인 지난 2월부터 여러 명이 와서 총리직을 제안했다”며 “대선 이후 ‘대통령실’이 주체가 돼 제안한 적 없다고 말하는 건 정치 게임”이라고 반박한 상태다.
각각의 전언과 보도가 거짓이 아니라면 윤석열 정부와 이재명 정부 모두 출범 초 상대 진영 인사를 총리로 기용하는 파격 구상을 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셈이다.
대통령제에서 총리는 대통령 다음 서열의 상징성을 지닌 자리인 만큼, 야권 인사 발탁은 협치 메시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카드다. 동시에 여당 내부 반발과 국정 동력 약화라는 부담도 함께 떠안아야 한다. 같은 날 튀어나온 두 개의 ‘미완의 총리 구상’은 통합을 말로 꺼내는 것과 실제 인선으로 옮기는 것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