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안 될 거라 했는데…9일 연속 '전 세계' 1위 중인 대반전 '한국영화'

2025-12-30 09:03

국내 평점 4점 vs 글로벌 72개국 1위의 비밀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 속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제대로 일을 낸 한국 영화가 있다.

'대홍수' 중 한 장면. / 유튜브 'KBS Entertain'
'대홍수' 중 한 장면. / 유튜브 'KBS Entertain'
김다미와 김병우 감독. / 뉴스1
김다미와 김병우 감독. / 뉴스1

바로 배우 김다미, 박해수 주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대홍수'에 대한 이야기다.

30일 글로벌 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대홍수'는 지난 19일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부문 1위에 올랐고, 이후 9일 연속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공개와 동시에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 등 해외 대작을 제치며 순위 최상단을 고정했다. 한국 영화가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부문에서 장기간 1위를 유지한 사례는 드물다는 점에서 기록 자체가 눈길을 끈다.

‘대홍수’는 소행성 충돌로 빙하가 붕괴되며 지구 대부분이 물에 잠기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구안나(김다미)가 거주하던 아파트 역시 급격히 침수되고, 안나는 아들 신자인(권은성)의 손을 잡고 고층으로 대피를 시도하지만 계단은 이미 주민들로 가득 차 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다. 이때 안나가 근무하던 연구소의 인력보안팀 직원 손희조(박해수)가 등장해 헬기가 옥상으로 도착할 것이라며 탈출 경로를 안내한다.

영화 '대홍수' 스틸컷. / 넷플릭스 제공
영화 '대홍수' 스틸컷. / 넷플릭스 제공

영화 초반부는 전형적인 재난 영화 문법을 따른다. 아파트 하층부가 완전히 잠긴 상황에서 누군가는 죽음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낯선 이들에게 집과 물을 내어준다. 임산부의 출산 장면과 빈집 약탈 장면이 교차하며 재난 속 인간 군상의 대비가 이어진다. 연출을 맡은 김병우 감독은 ‘더 테러: 라이브’에서 보여준 밀폐 공간의 긴장과 불안을 이번 작품에서도 반복적으로 활용한다.

관객 예상과 달리 영화는 중반 이후 SF 서사로 급격히 방향을 튼다. 안나는 인류 멸망을 대비해 새로운 인류에게 감정을 학습시키는 ‘이모션 엔진’ 개발의 핵심 인물이라는 사실을 전달받고, 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아들 신자인과의 분리가 불가피하다는 설정이 드러난다. 이후 영화는 감정을 데이터화해 AI에 학습시키는 과정을 연속적인 ‘퀘스트’ 수행처럼 묘사한다.

'대홍수' 주연 김다미. / 넷플릭스 제공
'대홍수' 주연 김다미. / 넷플릭스 제공

이 과정에서 스토리 설명은 최소화된다. 안나의 직업과 임무는 반복되는 화면과 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되고, 관객은 안나의 티셔츠에 적힌 숫자를 통해 몇 번째 실험 단계인지 추론해야 한다. 서사가 친절하게 안내되지 않는 구조는 관객의 호불호를 가르는 핵심 지점으로 작용했다.

영화는 기후 재난, 인공지능에 의한 인류 대체, 타임루프라는 복합적 주제를 품고 출발하지만, 후반부에는 ‘모성애’라는 단일 감정으로 수렴된다. 넘실대는 물의 공포를 구현한 VFX와 장기간 수중 촬영을 소화한 배우들의 신체적 연기가 강조되지만, 메시지의 확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함께 따른다.

이 같은 구성 탓에 국내 반응은 냉담했다. 네이버 영화 기준 관람객 평점은 10점 만점에 4.13점 수준에 머물렀고, 작품성에 대한 혹평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청 지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줬다. 플릭스패트롤 집계에서 ‘대홍수’는 영어·비영어권을 포함해 전 세계 72개국에서 1위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공개 한국 영화 중 가장 높은 성과를 냈다.

'대홍수' 주연 박해수, 권은성. / 넷플릭스 제공
'대홍수' 주연 박해수, 권은성. / 넷플릭스 제공

왜 국내 평점은 낮은데 글로벌 순위는 이렇게 높을까. 넷플릭스 이용 구조상 국가별 취향 차이가 즉각적으로 반영되고, 재난과 SF라는 보편적 소재가 언어 장벽을 상대적으로 낮췄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김다미는 인터뷰에서 재난이라는 소재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한 요인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보다 절제된 평가가 나온다. 허지웅은 SNS를 통해 작품이 과도하게 매도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문제의식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연출자인 김병우 감독 역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의 핵심 질문을 ‘사랑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가’로 설정했다고 밝히며, 감정과 인간관계에 대한 탐구를 강조했다.

'대홍수' 스틸컷. / 넷플릭스 제공
'대홍수' 스틸컷. / 넷플릭스 제공

영화 곳곳에는 이러한 주제를 시각화한 상징이 배치돼 있다. 구안나의 얼굴에 붙어 있던 공룡과 공작새 스티커는 진화와 도태를 상징하고, 이후 로켓과 헬기 스티커로 교체되며 인류의 선택과 이동을 암시한다. 신자인이라는 이름 역시 새로운 세대의 인간을 의미하도록 설계됐고, 손희조라는 인물은 버려진 아이가 성장했을 경우의 또 다른 가능성을 투영한 캐릭터로 설명된다.

기술적으로 가장 공을 들인 장면은 ‘드라이 포 웻’ 기법이 적용된 702호 시퀀스다. 실제 물 없이 와이어와 CG로 구현된 이 장면은 완성까지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고, 배우들은 물속에 있는 것처럼 연기해야 했다. 김다미는 전체 115회차 중 112회차에 등장하며 대부분 젖은 상태로 촬영을 이어갔고, 수중 촬영 과정에서는 안전 문제로 반복적인 휴식과 재촬영이 불가피했다.

‘대홍수’의 글로벌 흥행은 작품 완성도 논란과는 별개로, 넷플릭스 플랫폼에서 한국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극장 개봉 중심의 평가 구조와 OTT 시청 지표 사이의 간극, 재난·SF 장르의 국제적 보편성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에서 이 기록은 산업적으로도 의미를 남긴다.

유튜브, 삼촌의수다방

home 권미정 기자 undecided@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