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발탁, 이 대통령에겐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

2025-12-29 16:59

왜 ‘재정 매파’에게 나라 곳간 관리 맡하려 하나
‘방만 지출을 제어하고 재정 건전성 확보’ 의지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대통령실 이전 작업이 마무리된 청와대로 출근한 뒤 위성락 안보실장, 김용범 정책실장을 비롯한 참모들과 차담을 하고 있다. /뉴스1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대통령실 이전 작업이 마무리된 청와대로 출근한 뒤 위성락 안보실장, 김용범 정책실장을 비롯한 참모들과 차담을 하고 있다. /뉴스1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29일 첫 출근길에서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을 '퍼펙트 스톰'과 '회색 코뿔소'로 규정하며 민생과 성장에 대한 과감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 정부 초대 예산 수장직을 맡을 그의 향후 예산 편성과 운용 방향에 관심이 쏠린다.

이 후보자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만나 "지금 우리 경제는 성장 잠재력이 훼손되는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고물가와 고환율 등 대외 여건이 악화한 퍼펙트 스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인구 감소와 양극화 등을 거론하며 "이미 위험 신호가 충분했음에도 대응이 미뤄질 경우 현실화하는 회색 코뿔소의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대응 방향으로는 "단기적으로 예산을 배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안목을 갖고 기획과 예산을 연동해야 한다"며 "불필요한 지출은 찾아내서 없애고, 민생과 성장에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잠재성장률 하락 등 복합 위기 국면에서 재정의 적극적인 활용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번 인사는 정무적으로 보수 세력에 타격을 주는 동시에, 정책적으로는 재정 실리까지 챙기는 고도의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간 이 후보자는 재정 규율을 중시하며 확장적 재정 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재정 매파'다. 이 대통령은 이런 인물을 기획예산처 수장으로 기용함으로써 방만한 지출을 제어하고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후보자가 예산 수장을 맡으면 이 대통령으로선 보수 진영의 핵심 경제통을 포섭해 야권의 외연을 흔드는 동시에 ‘재정 매파’에게 나라 곳간을 관리하게 함으로써 예산 편성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게 된다. 재정 건전성 관리를 통해 국가 채무 증가 속도를 조절하면서도 지출 구조조정으로 확보된 재원을 정부 핵심 사업에 집중 투입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보수 인사를 기용해 '협치'의 모양새를 갖추면서도 재정 안정이라는 실효적 성과를 거두는 이른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관가에서는 이 후보자가 지출 구조조정을 강력히 단행할 경우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를 위한 재정적 여력이 한층 두터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후보자는 지명 직후 입장문을 통해 "경제와 민생 문제 해결은 정파와 이념을 떠나 누구든지 협력해야 한다"며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경험과 역량을 경제 회복에 쏟아붓겠다. 성장과 복지 모두를 달성해야 한다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 목표는 평생 경제를 공부한 제 입장과 똑같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과거 재난지원금 등 현금성 지원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며 재정 건전성을 경제의 '최후 안전판'으로 강조한 바 있는 만큼, 향후 확장 재정을 요구하는 여권 내부의 목소리와 자신의 소신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균형을 잡을지가 이번 인사의 성패를 가를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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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