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를 뺀 날 치과에서 가장 단호하게 들은 말 중 하나가 있다.
흡연과 음주는 물론이고 빨대 사용도 절대 하지 말라는 당부다. 술과 담배는 염증이나 출혈을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쉽게 이해된다. 그런데 빨대는 왜 안 되는 걸까. 오히려 커피나 음료를 마시거나 부드러운 음식을 먹을 때 도움이 될 것처럼 느껴지는데, 치과가 굳이 금지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사랑니 발치 후 입 안에서는 작은 상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상처’가 남는다. 치아가 빠져나간 자리는 빈 공간이 되고, 그 안에는 자연스럽게 혈액이 고이면서 혈병이라는 덩어리가 형성된다. 이 혈병은 단순한 피가 아니다. 상처를 덮어주는 보호막 역할을 하며, 세균 침투를 막고 잇몸과 뼈가 회복되는 환경을 만든다. 발치 후 회복 과정의 시작이자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빨대를 사용할 때 생기는 입 안의 압력이다. 빨대로 음료를 마시면 입 안이 순간적으로 강한 음압 상태가 된다. 이때 아직 단단히 자리 잡지 않은 혈병이 쉽게 떨어져 나갈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엔 피가 멈춘 것 같아도, 내부에서는 회복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 무너지는 셈이다. 혈병이 사라진 자리에는 뼈와 신경이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
이 상태를 흔히 ‘드라이 소켓’이라고 부른다. 사랑니 발치 후 가장 고통스러운 합병증 중 하나로, 극심한 통증과 악취, 염증이 동반된다. 통증은 발치 부위에만 국한되지 않고 귀나 관자놀이, 턱 전체로 퍼지기도 한다. 진통제를 먹어도 잘 가라앉지 않아 다시 치과를 찾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빨대 하나 사용한 결과로 며칠에서 몇 주까지 고생이 이어질 수 있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빨대가 문제라면 컵에 담아 천천히 마시는 방식이 훨씬 안전하다. 이때도 주의할 점은 있다. 뜨거운 음료는 혈관을 확장시켜 출혈을 유발할 수 있어 발치 당일에는 피하는 것이 좋다. 미지근하거나 차가운 음료를 입 안에서 굴리지 않고 삼키는 것이 그나마 부담이 적다.

부드러운 음식을 먹을 때도 빨대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죽이나 미음, 요거트 같은 음식은 숟가락으로 천천히 먹는 것이 안전하다. 씹지 않아도 되는 음식이라도 입 안에서 빨아들이는 동작이 반복되면 발치 부위에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특히 무의식적으로 상처 쪽으로 혀를 밀거나 음식을 끌어당기게 되면 회복을 방해한다.
치과에서 빨대를 금지하는 이유는 단순히 조심하라는 차원이 아니다. 발치 후 며칠은 작은 행동 하나가 회복 속도를 크게 좌우한다. 빨대 사용은 흡연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상처를 자극하고, 문제가 생긴 뒤에야 원인을 깨닫게 되는 행동이다. 그래서 의료진은 가장 확실하게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빨대를 아예 사용하지 말라고 권한다.
사랑니 발치 후의 관리는 복잡하지 않지만, 지켜야 할 원칙은 분명하다. 입 안에 음압을 만들지 말 것, 상처를 자극하지 말 것, 혈병을 지켜줄 것. 빨대 금지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지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치다. 며칠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회복은 훨씬 편안해진다. 결국 치과의 당부는 괜한 엄포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예방책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