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트리 광주전남취재본부 노해섭 기자]12월의 마지막 주, 광주의 한 대학 교정은 한 사람을 향한 존경과 그리움으로 가득 찼다.
400여 명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호남대학교의 설립자, 성인(省仁) 박기인 박사의 마지막 길이었다. 그의 영정 앞에서, 제자들과 동료들은 한 교육자가 일생을 바쳐 이뤄낸 위대한 유산의 의미를 되새겼다.
#허허벌판에 심은 ‘육영보국’의 씨앗
영결식장에 울려 퍼진 장중한 조곡은, 1978년의 어느 날로 시간을 되돌렸다. 추모 영상 속, 허허벌판에 첫 삽을 뜨던 청년 박기인의 모습은 ‘인재를 키워 나라에 보답한다(育英報國)’는 그의 신념이 얼마나 굳건했는지를 보여주었다.
김덕모 대학원장은 약력 보고를 통해 1934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하여 호남대학교 이사장, 광남일보 회장 등을 역임하고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한 고인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했다.
장병완 장례위원장은 "설립자께서 연 배움의 문을 통해 수많은 청년이 꿈을 펼쳤다"며, 그가 뿌린 작은 씨앗이 오늘날 거대한 숲을 이루었음을 회고했다.
#광주를 키운 거목, 시대를 이끌다
그의 꿈은 단지 대학의 담장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추도사를 통해 “오늘의 광주는, 박기인이라는 거목이 드리운 그늘 아래서 자랐다”며 그의 혜안에 깊은 존경을 표했다. 호남대학교가 지역의 한복판에서 꿋꿋이 청년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었기에, 광주는 더 큰 미래를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이들은 그의 유지를 받들어 ‘사람을 키우는 일’을 도시의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유자차의 온기, 축구 명가의 열정
영결식은 딱딱한 업적의 나열이 아니었다. 교직원을 대표한 한선 홍보실장은, 교직원들에게 따뜻한 유자차를 건네던 그의 인간적인 온기를 추억했다. ‘축구 명가’의 기틀을 닦은 만능 스포츠맨으로서의 열정 또한 생생히 떠올렸다. ‘기본을 잘 지키면 결과가 좋다’던 그의 묵직한 가르침은, 화려한 경력보다 더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당신의 길을 따르겠습니다”…남은 이들의 굳은 맹세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인의 마지막 길에서, 남은 이들은 슬픔을 넘어 굳은 맹세를 헌사했다. 강승우 총학생회장은 “캠퍼스에서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설립자님의 터전 위에서 존재함을 깨달았다”며, 그가 지켜온 교육의 가치를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박상건 호남대학교 이사장은 유족인사를 통해 “교직원들의 노고 덕분에 좋지 않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차질없이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며 “유족들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전했다.
영결식에 앞서 운구행렬은 봉선동 자택과 옛 쌍촌캠퍼스, 광산캠퍼스 본관 집무실 등을 들러 고인의 발자취를 기렸다. 영결식 후 故박기인 명예이사장은 전남 함평군 월야면 선영에 안장돼 영면에 들었다.
그의 육신은 함평 선영에 잠들었지만, 그가 남긴 정신은 이제 40여 년 역사의 대학 곳곳에 스며들어 영원한 스승으로 살아 숨 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