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는 투박한 음식이라는 인식을 깨는 순간은 반죽을 극도로 얇게 밀어 국물 위에 올릴 때 찾아온다. 찰랑찰랑 흔들리다 후루룩 넘어가는 얇은 수제비는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맛이 결정된다.
◆ 수제비의 식감은 반죽 두께에서 갈린다
수제비가 질기거나 밀가루 냄새가 나는 이유는 대부분 반죽이 두껍기 때문이다. 얇은 수제비는 씹는 음식이라기보다 국물과 함께 미끄러지듯 넘어가는 음식에 가깝다. 그래서 목표는 분명하다. 손으로 집었을 때 종잇장처럼 흐느적거리고, 물 위에 올리면 살짝 비칠 정도의 두께다. 이 정도가 되어야 수제비가 국물의 일부처럼 어우러진다.

◆ 반죽 재료는 단순할수록 좋다
아주 얇은 수제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밀가루, 물, 소금이 전부다. 달걀이나 기름을 넣으면 반죽은 부드러워지지만 얇게 밀었을 때 탄력이 과해져 찢기기 쉽다. 밀가루는 중력분이 가장 적당하다. 강력분은 탄성이 너무 강하고, 박력분은 늘어짐이 심해 형태 잡기가 어렵다. 소금은 아주 소량만 넣어 글루텐 형성을 돕는 역할로 충분하다.
◆ 물 조절이 얇기의 핵심이다
반죽을 할 때 물은 한 번에 넣지 않는다. 밀가루에 물을 조금씩 넣어가며 젓가락으로 먼저 섞는다. 덩어리가 생기기 시작하면 손으로 가볍게 뭉친다. 이때 목표는 매끈한 반죽이 아니라, 살짝 거칠고 단단한 상태다. 처음부터 부드럽게 만들면 얇게 밀 때 형태가 무너진다. 단단하게 시작해 휴지 과정에서 부드러워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죽을 한 뒤에는 최소 30분 이상 휴지한다. 이 과정에서 수분이 고르게 퍼지고 글루텐이 안정된다. 휴지가 끝난 반죽은 처음보다 훨씬 말랑해진다. 얇은 수제비를 원한다면 냉장 휴지를 한 번 더 거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차가운 상태의 반죽은 늘어짐이 적어 얇게 밀기 쉽다.

◆ 밀 때는 힘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반죽을 밀 때는 한 방향으로만 밀지 않는다. 가운데에서 바깥으로, 반죽을 돌려가며 여러 방향으로 밀어야 두께가 고르게 나온다. 밀대에 힘을 주기보다 반죽 위를 스치듯 굴린다는 느낌이 좋다. 밀가루를 과하게 뿌리면 반죽이 미끄러져 얇아지는 감각을 놓치기 쉽다. 최소한만 사용한다.
아주 얇은 수제비는 손으로 두껍게 뜯어 넣는 방식과 맞지 않는다. 밀어놓은 반죽을 가장자리부터 살짝 들어 올려 찢듯이 떼어낸다. 이때 모양은 일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불규칙한 가장자리가 국물을 더 잘 머금는다. 얇기만 유지된다면 모양은 맛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 끓는 물이 아닌 국물에서 익힌다
얇은 수제비는 물에 삶는 순간 식감이 무너질 수 있다. 육수나 국물이 살짝 끓고 있는 상태에서 넣는 것이 좋다. 너무 센 불은 피한다. 수제비가 국물 위에서 흔들리듯 떠오르며 익는 모습이 보이면 성공이다. 익는 시간은 길지 않다. 투명해지는 순간 바로 건져야 후루룩 넘어가는 식감이 살아난다.
얇은 수제비는 포만감보다 만족감이 크다. 밀가루를 먹었다는 느낌보다 국물을 한층 부드럽게 마셨다는 인상이 남는다. 씹는 소리도 거의 없고, 입안에서 사라지는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같은 재료로도 훨씬 가볍고 세련된 한 그릇이 된다.

◆ 수제비는 기술보다 감각의 음식
아주 얇은 수제비를 만드는 데 특별한 도구는 필요 없다. 다만 반죽의 상태를 손끝으로 읽고, 밀리는 소리를 귀로 듣는 감각이 중요하다. 찰랑거리며 흔들리는 반죽을 국물 위에 올리는 순간, 수제비는 더 이상 투박한 음식이 아니다. 얇아서 더 기억에 남는 맛, 그게 바로 제대로 만든 수제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