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의실 풍경과 학사 제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단순히 학과를 통폐합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새로운 단과대학을 만들거나 4년제 대학에서 전문학사 학위를 주는 파격적인 시도까지 등장했다. 교육부가 23일 발표한 2025 대학 규제 혁신 우수 사례 공모전 결과는 이러한 대학가의 치열한 혁신 노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교육부는 접수된 23개 사례 중 전문가 평가와 국민 투표를 거쳐 호서대학교, 숭실대학교, 건국대학교, 한양여자대학교, 원광대학교 등 총 5곳을 우수 대학으로 선정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 첨단 산업 분야다. 호서대학교는 지역 혁신 중심 대학 지원 체계(RISE)를 활용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분야에 승부수를 던졌다. 단순히 학과 하나를 만드는 게 아니라 교내 행정 조직을 전면 개편해 계약학과 전담 조직을 꾸렸다. 이를 통해 2026학년도에는 반도체 디스플레이학과, 첨단 산업 AI 공학과 등 3개 과정에서 신입생을 모집한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공정 설비와 유사한 실습 장소를 구축해 기업이 진짜 원하는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전략이다.
숭실대학교는 학교의 체질 자체를 인공지능 중심으로 바꿨다. 입학 정원을 자체적으로 조정해 160명 규모의 AI 대학을 신설했고, 오는 4월 문을 연다. 여기에 AI 전문대학원과 AI 위원회까지 신설하며 학부생부터 대학원생, 교직원까지 학교 구성원 전체가 AI 역량을 갖추도록 지원한다. 이른바 대학의 AX(AI 전환)를 선언한 셈이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전공을 고를 기회도 대폭 늘어났다. 건국대학교는 기존에 일부에게만 적용되던 전공 자율 선택권을 전체 학생으로 확대했다. KU자유전공학부와 단과대학별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해 입학생 731명을 선발하고, 학생들이 특정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학문을 탐색할 수 있게 했다. 흥미로운 점은 디지털 배지 도입이다. 소단위 전공 과정을 이수하면 이를 인증해 주는 시스템을 구축해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학습 경로를 설계하도록 도왔다.
한양여자대학교는 자유 설계 학기를 도입해 학교 밖에서의 경험도 학점으로 인정해 준다. 학교 밖 수업 운영 기준을 활용해 학생들이 스스로 진로를 탐색하고 비정형적인 학습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였다.
가장 파격적인 사례로는 원광대학교가 꼽혔다. 원광대는 원광보건대학교와의 통합을 앞두고 있는데, 통합된 일반대학에서 전문학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현행법상 일반대학은 학사 학위만 줄 수 있지만, 규제 특례를 적용받아 임상병리나 물리치료 같은 보건 계열 학과는 통합 후심화 교육을 진행한다. 이는 학령인구 감소 위기 속에서 대학이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 변신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국민 심사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교육부는 이번에 선정된 우수 사례들이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도록 지원을 이어갈 방침이다. 오는 29일 시상식과 함께 간담회를 열어 대학 현장의 애로사항을 직접 듣는다. 또한 RISE 체계나 BK21 사업 등 재정 지원 사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한 규제들도 계속해서 발굴해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최은옥 교육부 차관은 실제로 개선된 제도가 현장에 적용되어 확산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앞으로도 대학이 본연의 교육과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규제 혁신을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