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상고대 명소를 찾는 이들에게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산을 추천한다.

겨울 공기가 가까워지면서 눈 소식이 들릴 즈음이면 “상고대 한 번은 봐야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다만 겨울 산행은 장비와 체력이 부담이라 망설여지기 쉬운데, 그런 때 포장된 임도를 따라 천천히 오르며 설경을 만날 수 있는 산으로 태기산을 추천한다.
등산 초보도 아이젠 같은 기본 장비만 갖추면 비교적 무리 없이 설경을 즐길 수 있고 날이 맑게 갠 아침에는 능선과 나뭇가지에 하얀 결정이 붙어 상고대가 피는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 태기산이다.
◈ 초보도 찾는 이유, 포장도로 따라 오르는 ‘눈 산행’
태기산은 강원도 평창·횡성·홍천 3개 군 경계에 걸친 해발 1261m 산이다. 횡성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도 알려져 있다. 겨울에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양구두미재(무이쉼터)에서 시작해 정상부 전망대 일대를 찍고 돌아오는 원점 회귀다. 내비게이션에는 ‘양구두미재’나 ‘무이쉼터’를 검색하고 가면 된다.

다만 주말에는 주차가 가장 큰 변수다. 눈이 온 직후처럼 상고대 기대감이 커진 날에는 등산객 차량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고개 일대가 빠르게 붐빈다. 승용차와 관광버스가 뒤엉켜 잠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 가능하면 이른 시간에 도착하거나 대중교통·동행 차량을 조정해 접근하는 편이 낫다.
태기산 코스의 장점은 정상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에 임도와 포장도로 구간이 길게 이어진다는 점이다. 초반부터 급경사를 타지 않고 완만한 길을 따라 고도를 올리는 구조라 걷는 부담이 덜하고 눈이 쌓여도 길 폭이 넓어 동선이 단순한 편이라 아이젠만 제대로 착용하면 초보도 속도를 조절하며 올라갈 수 있다.
무이쉼터에서 정상부 쪽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거리 기준으로는 2~3km대 안내가 많이 붙고, 눈 상태에 따라 체감 시간은 달라지지만 대체로 여유 있게 잡아도 1시간 안팎으로 전망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다. 왕복 원점 회귀로 잡으면 대략 8km 안팎이라 겨울 기준 3~4시간 정도로 계획하면 무난하다. 눈이 내린 직후에는 산 전체가 하얗게 덮이면서 길 자체가 설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강해 포장도로 산행이라도 만족도가 높다.

◈ 풍력발전기 설경, 태기산의 시그니처
태기산을 걷다 보면 어느 지점부터 풍경이 확 바뀐다. 임도 따라 완만하게 올라가던 길이 능선 쪽으로 붙으면서 시야가 트이고, 그때부터 풍력발전기들이 길게 줄지어 나타난다. 눈이 쌓인 날에는 넓은 길이 그대로 남아 걷기가 수월한 편인데, 길 양옆으로는 눈밭이 끝까지 이어져 “여기 정말 한국 맞나” 싶은 장면이 나온다.
풍력발전기는 멀리서 보면 설경 위에 박힌 점처럼 보이다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크기가 실감 난다. 하얀 설원과 파란 하늘 사이에서 풍차가 돌아가는 모습은 태기산에서 가장 ‘태기산다운’ 장면으로 꼽힌다. 상고대가 낀 날이면 능선의 흰 결이 더 또렷해지고, 풍차 주변으로 서리 낀 나무들이 겹치면서 사진이 훨씬 선명하게 나온다.

사진은 능선을 따라 풍차가 연달아 보이는 지점에서 한 번, 풍차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구간에서 또 한 번 찍는 사람들이 많다. 데크길처럼 ‘딱 이 포인트’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길이 넓고 조망이 열려 있어 걷다가 마음에 드는 구간에서 멈춰 찍기 좋다.
다만 겨울에는 풍력발전기 날개나 구조물에 붙은 얼음이 떨어질 수 있어 바로 아래에 오래 서 있는 건 피하는 게 안전하다. 바람이 센 날엔 더 조심하는 편이 좋고 사진을 찍더라도 거리를 두고 빠르게 움직이는 게 좋다.
◈ 정상은 전망대에서, 준비물은 ‘미끄럼’ 대비가 핵심
태기산 정상부에는 군부대가 있어 정상석을 바로 밟지 않고 인근 전망대까지 올라 조망을 보는 방식이다.

길은 임도를 따라 전망대 방향으로 이어진다. 길 폭이 넓고 동선이 단순해 겨울 산행 초보도 따라가기 수월한 편이지만, 중간에 산길로 붙는 구간은 경사가 생겨 눈 상태에 따라 발이 더 쉽게 미끄러질 수 있다. 눈이 눌려 얼어붙은 날에는 같은 구간도 체감 난이도가 확 달라진다.
준비물은 미끄럼 대비가 핵심이다. 아이젠은 기본이고 스틱이 있으면 균형 잡기가 훨씬 좋다. 눈이 깊은 날에는 스패츠까지 챙겨 발목과 바짓단을 보호하는 게 좋다. 포장도로 구간이 길다고 해도 눈이 얇게 얼어붙으면 오히려 더 미끄럽게 느껴질 수 있어 하산길에서는 속도를 줄이는 편이 안전하다.
바람도 변수다. 능선이 트여 있어 체감 온도가 빠르게 떨어지는 날이 많다. 방풍 재킷과 모자, 보온장갑 같은 기본 방한 장비를 갖추고 손발이 굳기 전에 체온을 유지하면서 일정한 페이스로 걷는 게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