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선 흔한 밥도둑인데…일본에선 상류층만 즐긴다는 '한국 음식'

2025-12-22 13:49

최근 일본 내 상류층, 미식가들 사이서 인기

일본인들의 식습관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이 하나 있다. 바로 ‘밥’을 먹는 양이다. 흔히 일본 음식은 정갈하고 양이 적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식사 현장에서는 반찬 한 점에 밥을 대여섯 번씩 퍼먹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에서 산처럼 쌓인 고봉밥을 먹는 연출이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간장 게장 자료사진 / Hyung min Choi0-shutterstock.com
간장 게장 자료사진 / Hyung min Choi0-shutterstock.com

이처럼 반찬 대비 밥 섭취량이 압도적으로 높은 일본인들에게 최근 ‘최고의 미식’이자 ‘궁극의 밥도둑’으로 추앙받는 한국 음식이 있다.

바로 간장게장이다. 과거에는 일부 마니아층만 즐기던 음식이었으나, 최근에는 일본 내 상류층과 미식가들 사이에서 ‘한국 방문 시 반드시 먹어야 할 메뉴 1위’로 꼽히며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인의 영원한 소울푸드, 일본인의 취향까지 저격

사실 간장게장은 한국인에게도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영원한 ‘밥도둑’이다. 갓 지은 따끈한 쌀밥에 짭조름하고 달큰한 간장 양념, 그리고 녹진한 게의 속살이 어우러지는 맛은 한국인에게도 최고의 사치다. 특히 게딱지에 밥을 비벼 먹는 문화는 한국인들에게 일종의 의식과도 같다. 이러한 한국인의 유별난 ‘게장 사랑’이 이제는 국경을 넘어 일본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간장게장 자료사진 / Hyung min Choi0-shutterstock.com
간장게장 자료사진 / Hyung min Choi0-shutterstock.com

간장게장이 일본인들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은 비결은 일본인들의 식문화 코드와 완벽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기본적으로 간장(쇼유) 베이스의 양념에 매우 익숙하다. 여기에 날생선이나 해산물을 생으로 즐기는 ‘나마(날것)’ 문화가 발달해 있어, 간장에 절인 생꽃게의 감칠맛은 그들에게 거부감 없는 최상의 풍미로 다가간다.

실제로 세계적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으로 주저 없이 간장게장을 꼽은 바 있다. 그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간장게장 맛집을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러한 유명 인사들의 ‘게장 사랑’은 일본 대중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일본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한국 음식을 다룰 때 간장게장은 단골 소재다. 심지어는 간장게장만을 주제로 한 특집 편성이 따로 제작될 정도로 그 인기가 뜨겁다.

일본선 두 마리에 10만 원? “귀하신 몸” 된 이유

간장게장 자료사진 / piabio-shutterstock.com
간장게장 자료사진 / piabio-shutterstock.com

재미있는 점은 일본 내에서 간장게장이 상당히 고가의 ‘고급 요리’로 분류된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생선회(사시미)나 초밥 문화는 전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신선한 게를 생으로 양념에 절여 먹는 문화는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간장게장을 맛보려면 한국인이 운영하는 전문 음식점을 찾아가야 하는데, 희소성 때문에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는다.

일본 현지 전문점에서 간장게장을 주문하면 두 마리에 1만 엔(한화 약 9만~10만 원)을 호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웬만한 고급 가이세키 요리 못지않은 가격대다 보니, 일반 서민들이 평소에 즐기기보다는 상류층이나 특별한 날을 맞은 미식가들이 찾는 ‘귀한 음식’ 대접을 받는다.

이러한 가격 차이 때문에 한국을 찾은 일본 관광객들에게 간장게장 전문점은 그야말로 ‘가성비 천국’이다. 한국에서는 2만 원 내외면 훌륭한 게장 정식을 즐길 수 있고, 무한리필 전문점까지 존재한다는 사실에 일본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한국 식당에서 “오이시(맛있다)”를 연발하며 배가 터질 정도로 게장을 먹고 가는 풍경이 이제는 익숙한 모습이 되었다.

‘지구촌 밥도둑’으로 진화 중인 간장게장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네컷 웹툰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네컷 웹툰

간장게장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짠맛 때문이 아니다. 꽃게의 타우린 성분이 간장의 아미노산과 만나며 폭발시키는 감칠맛의 조화가 핵심이다. 최근 한국의 게장 업체들은 일본 시장을 겨냥해 염도를 낮추고 단맛을 살짝 가미한 ‘저염식 게장’을 선보이며 현지 입맛을 더욱 정밀하게 공략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쿄의 신오쿠보 등 한인 타운을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게장 집들이 생겨나며 대중화의 물꼬를 트고 있지만, 여전히 ‘진짜 게장’을 맛보려는 일본인들의 한국행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간장게장은 단순히 한국의 전통 음식을 넘어,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인의 입맛을 마비시키는 ‘글로컬(Glocal)’ 미식 아이콘으로 거듭나고 있다.

home 김지현 기자 jiihyun1217@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