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육 삶고 남은 물 버리지 마세요…순식간에 근사한 요리로 완성됩니다

2025-12-21 17:46

버려지는 수육 국물로 완성하는 한 끼

한국인의 식탁에서 수육은 잔치나 모임의 단골 메뉴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된 이미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된 이미지

돼지고기를 각종 향신 채소와 함께 푹 삶아내면 부드러운 고기가 완성되는데, 대개 고기를 건져낸 뒤 남은 육수는 버려지기 일쑤다. 하지만 이 육수야말로 일본 라멘의 핵심인 돈골 및 돈육 베이스의 국물과 매우 닮아 있다. 수육을 삶고 남은 국물을 버리지 않고 적절히 가공하면 집에서도 전문점 못지않은 일본식 라멘을 구현할 수 있다.

수육 육수가 라멘 베이스가 될 수 있는 이유

일본 라멘의 국물은 크게 돼지 뼈를 우려낸 돈코츠, 닭 뼈를 우려낸 토리파이탄, 그리고 고기를 삶아낸 국물을 혼합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수육 육수는 이 중 돼지고기의 풍미가 녹아든 육수에 해당한다. 고기를 삶는 과정에서 근육 속의 수용성 단백질과 지방, 그리고 감칠맛 성분인 이노신산이 국물로 빠져나온다. 여기에 수육 특유의 잡내를 잡기 위해 넣었던 마늘, 대파, 양파, 생강 등의 향신 채소 성분은 라멘 육수의 기초적인 향미를 형성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전문점에서는 뼈를 12시간 이상 우려 진한 맛을 내지만, 가정용 수육 육수는 살코기에서 우려난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이를 일본에서는 청탕이라 부르는데, 맑으면서도 고기 본연의 단맛이 살아있는 육수는 최근 일본 라멘계에서도 유행하는 스타일이다.

수육 육수를 라멘 국물로 전환하는 과정

라멘 자료사진 / Caillou Wang-shutterstock.com
라멘 자료사진 / Caillou Wang-shutterstock.com

수육 육수를 그대로 라멘 국물로 쓰기에는 간이 맞지 않거나 기름기가 과할 수 있다. 우선 국물이 식은 뒤 표면에 하얗게 굳은 기름을 걷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나친 지방은 라멘의 깔끔한 맛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기름을 걷어낸 육수에 일본식 조미료인 쇼유(간장)나 미소(된장)를 더해 간을 맞춘다. 가장 간편한 방법은 간장, 설탕, 맛술을 섞어 끓인 타레를 육수에 섞는 것이다. 이때 멸치나 가쓰오부시를 넣고 잠시 우려내면 돼지고기의 육향에 해산물의 감칠맛이 더해진 더블 스프 스타일의 라멘이 완성된다. 육수가 너무 진하다면 물을 섞어 농도를 조절하고, 너무 맑다면 시판되는 치킨스톡을 한 꼬집 넣어 감칠맛을 보강하는 것도 방법이다.

면과 고명의 조화, 완벽한 라멘의 완성

육수가 준비되었다면 다음은 면이다. 일본 라멘의 면은 알칼리제인 간수를 넣어 탄력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집에서는 시판되는 생소면이나 중화면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흡사하다. 면을 삶을 때는 물에 베이킹소다를 한 스푼 넣으면 소면 특유의 밀가루 냄새를 잡고 라멘 면발과 유사한 쫄깃한 식감을 얻을 수 있다.

라멘 자료사진 / tkyszk-shutterstock.com
라멘 자료사진 / tkyszk-shutterstock.com

고명은 수육 요리에서 남은 고기를 그대로 활용하면 된다. 일본의 차슈는 돼지고기를 간장 소스에 조린 것이지만, 수육 조각을 간장, 설탕, 물을 섞은 소스에 살짝 졸여내면 훌륭한 차슈 대용이 된다. 여기에 반숙으로 삶은 달걀, 송송 썬 대파, 그리고 숙주나물을 곁들인다. 숙주는 뜨거운 육수에 살짝 데쳐 아삭한 식감을 살리는 것이 포인트다. 마지막으로 구운 김 한 장을 올리면 시각적으로나 맛으로나 완벽한 일본식 라멘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영양학적 가치와 식재료의 효율적 활용

수육 육수에는 돼지고기에서 유래한 필수 아미노산과 비타민 B1이 녹아 있다. 비타민 B1은 탄수화물 대사를 도와 피로 회복에 효과적이며, 마늘과 양파에서 우러난 성분은 면역력을 높여준다. 또한 남은 육수를 활용하는 것은 식재료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용하는 친환경적 요리 방식이기도 하다. 육수를 한 번에 다 쓰기 어렵다면 1인분씩 소분하여 냉동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면만 삶아 넣으면 간편한 일품요리가 된다.

수육을 맛있게 먹은 뒤 남은 육수를 버리기 전에 잠시 멈춰보자. 그 국물 안에 일본 현지의 맛을 재현할 수 있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 따끈한 육수에 면을 말아 차슈 한 점을 올리는 순간, 주방은 작은 라멘 전문점으로 변신한다.

home 김지현 기자 jiihyun1217@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