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피할 수 없는 게 있다. 모임이고 술자리다. 한두 잔만 마신다고 마음먹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잔이 늘어나는 건 순식간이다. 문제는 다음 날이다. 눈은 떠졌는데 속이 미묘하게 울렁거리고, 머리는 맑지 않다. 이럴 때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메뉴가 콩나물국이다. 그런데 같은 콩나물국인데도 유독 속이 편안해지는 국물이 있다. 비밀은 의외의 재료, 새우젓이다.
콩나물국이 해장 음식으로 자리 잡은 이유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콩나물에는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하다. 이 성분은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 생기는 아세트알데히드를 처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술 마신 다음 날 콩나물국을 먹으면 속이 한결 가벼워지는 이유다. 여기에 뜨거운 국물은 위장을 부드럽게 자극해 소화 기능을 깨운다. 해장국으로 콩나물국이 오래 사랑받아온 데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콩나물국을 끓이다가 한 가지 벽에 부딪힌다. 시원한 맛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멸치육수를 써도, 다시마를 넣어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새우젓이 등장한다. 새우젓은 단순한 간 재료가 아니다. 발효 과정에서 만들어진 아미노산과 핵산 성분이 국물에 깊이를 더한다. 인위적인 조미료 없이도 국물이 또렷해지는 이유다.
새우젓의 가장 큰 장점은 감칠맛과 염도의 균형이다. 소금으로 간을 하면 짠맛이 먼저 튀어나오기 쉽다. 반면 새우젓은 짠맛보다 먼저 감칠맛이 퍼진다. 덕분에 국물이 맑고 시원하게 느껴진다. 특히 숙취 상태에서는 혀가 예민해져 강한 짠맛이나 기름진 맛이 부담이 된다. 새우젓이 해장용 콩나물국에 잘 어울리는 이유다.

조리할 때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새우젓은 처음부터 많이 넣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콩나물과 물을 먼저 끓여 기본 맛을 낸 뒤, 불을 줄이고 새우젓을 아주 소량씩 넣어 간을 맞춰야 한다. 이때 국자를 사용해 국물만 맛보는 것이 좋다. 건더기와 함께 먹으면 짠맛을 과하게 느낄 수 있다. 해장용 콩나물국은 끝맛이 깔끔해야 한다.
마늘 사용도 조심해야 한다. 마늘은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되지만, 너무 많이 넣으면 국물이 무거워진다. 다진 마늘은 향을 더하는 정도로만 사용한다. 대신 대파를 넉넉히 넣으면 국물에 자연스러운 단맛과 시원함이 살아난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는 맑은 콩나물국일수록 이 차이가 분명해진다.

새우젓을 넣은 콩나물국은 속을 데우는 방식도 다르다. 자극적으로 확 깨우는 해장이 아니라, 천천히 몸을 정상 리듬으로 돌려놓는 느낌에 가깝다. 술로 인해 늘어진 위장과 장을 갑자기 자극하지 않고, 부드럽게 움직이게 돕는다. 그래서 출근을 앞둔 아침에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해장국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다음 날까지 여운이 남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먹을 때는 시원한데 오후가 되면 더부룩해지는 해장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새우젓으로 간한 콩나물국은 먹고 난 뒤 속이 조용해지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연말 술자리 다음 날, 다시 찾게 된다.
연말이 지나도 숙취는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해장의 방식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콩나물국에 새우젓을 더하는 작은 변화만으로도, 다음 날 아침의 컨디션은 확연히 달라진다. 술자리가 잦아지는 시기일수록, 국물 하나는 제대로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