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요리를 들여다보다 보면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채소가 자주 등장한다.
이번에 소개할 것은 겨울철이 되면 일본 가정과 식당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표적인 제철 식재료다. 한국에서도 순무라는 이름이 낯설지는 않지만, 실제 식탁에서 흔히 접하기는 쉽지 않다. 같은 뿌리채소임에도 두 나라에서의 존재감은 꽤 다르다.

그런 바로 가부라인데 배추과에 속하는 뿌리채소로, 둥근 모양의 흰 뿌리와 부드러운 잎이 특징이다. 한국 무보다 크기는 작고 식감은 훨씬 연하다. 생으로 먹으면 살짝 알싸한 맛이 있지만, 불을 가하면 단맛이 빠르게 올라온다. 일본에서는 뿌리뿐 아니라 잎까지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버릴 것이 거의 없는 채소로 여겨진다.

한국에서도 순무는 존재하지만, 재배량과 소비량 모두 많지 않다. 무가 워낙 대중적이다 보니 순무가 그 자리를 대신할 필요가 없었던 탓이 크다. 김치, 국, 찌개 등 한국 요리는 무를 중심으로 발달해왔고, 순무는 상대적으로 조리법이 제한적이라는 인식도 있다. 그 결과 시장이나 마트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채소가 됐다.
반면 일본에서는 가부라가 겨울을 대표하는 채소로 자리 잡았다. 추운 계절에 수확한 가부라는 조직이 단단해지면서 단맛이 강해진다. 눈이 내린 뒤 수확한 가부라는 특히 맛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겨울철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뿌리채소라는 이미지도 강하다. 계절감을 중시하는 일본 식문화에서 가부라는 겨울을 상징하는 재료 중 하나다.

가부라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가장 대표적인 요리는 절임이다. 얇게 썬 가부라를 소금이나 식초로 가볍게 절여 먹으면, 아삭함과 은은한 단맛이 살아난다. 국이나 조림에 넣으면 무보다 빨리 익어 부드러운 식감을 낸다. 가부라를 통째로 끓여내는 요리는 겨울철 몸을 데워주는 음식으로 사랑받는다.
일본에서는 가부라 잎을 버리지 않는다. 잎을 잘게 썰어 볶거나 국에 넣어 영양을 더한다. 비타민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겨울철 부족해지기 쉬운 영양을 보충하는 데 도움을 준다. 뿌리와 잎을 함께 먹는 식습관은 재료를 아끼고 자연을 존중하는 일본의 식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가부라는 몸을 따뜻하게 하는 성질을 가진 채소로 알려져 있다. 찬 기운이 강한 겨울에 소화 부담이 적고, 위장에 편안한 음식으로 여겨진다. 감기 기운이 있을 때 가부라를 넣은 국을 먹는 가정도 적지 않다. 부드러운 식감 덕분에 노인이나 아이도 먹기 쉽다는 점에서 겨울 가정식 재료로 활용도가 높다.

가부라는 한국 요리에도 충분히 응용할 수 있는 재료다. 무 대신 국이나 찌개에 넣어도 맛이 순하고, 나물이나 겉절이로 만들어도 부담이 없다. 특히 겨울철 가벼운 국물 요리를 찾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순무가 낯선 채소로 남아 있지만, 일본에서의 활용법을 참고하면 식탁의 폭을 넓힐 수 있다.
결국 가부라는 화려한 재료는 아니지만, 계절과 몸을 생각하는 식문화 속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채소다. 한국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겨울 밥상에 부드럽고 따뜻한 변화를 주기에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