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무부가 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수사 문건을 지난 19일(현지 시각) 추가로 공개했다. 이번 공개 자료에서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여성들과 친밀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다수 포함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법무부는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수십만 건에 달하는 엡스타인 수사 문건 공개를 시작했다. 이는 지난 11월 미 연방의회가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키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엡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에 따른 것이다.
해당 법은 법무부가 보유한 엡스타인 관련 기록을 30일 이내에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날이 바로 그 시한 만료일이었다.
공개된 자료에는 연방수사국이 엡스타인을 수사하며 확보한 사진과 증거들이 담겼다. 피해자 약 1200명에 대한 수사 기록과 엡스타인의 자살 경위 관련 문서도 포함됐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클린턴 전 대통령과 관련된 여러 장의 사진이다. 공개된 사진에서 클린턴은 엡스타인의 과거 연인이자 성범죄 공범인 길레인 맥스웰과 함께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다.
다른 사진에서는 얼굴이 가려진 한 여성의 허리 쪽에 팔을 두른 채 친밀한 자세로 앉아 있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한 여성과 욕조에 함께 들어가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법무부는 클린턴의 욕조 사진에서 얼굴이 가려진 사람은 엡스타인의 성범죄 피해자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클린턴이 마이클 잭슨, 믹 재거 등 당대 최고 스타들과 함께 있는 모습도 담겼다.
공개된 문서에는 사진을 촬영한 시점이나 맥락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 진영은 즉각 소셜미디어에 클린턴의 사진들을 공유하며 조롱에 나섰다. 게이츠 맥개빅 법무부 대변인은 엑스에 "존경하는 민주당 대통령님"이라며 비꼬는 글을 올렸다.
그는 "검은색 상자는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추가된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스티븐 청 백악관 공보국장과 애비게일 잭슨 백악관 부대변인도 비판에 가세했다.
반면 이날 공개된 자료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된 사진이나 문서는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트럼프는 엡스타인과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교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클린턴 측은 법무부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몰리는 비난을 회피하려고 클린턴을 이용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앤젤 우레나 클린턴 측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20년도 넘은 흐릿한 사진을 얼마든지 공개할 수는 있겠지만 이 사안은 빌 클린턴에 관한 것이 아니다"며 "트럼프가 자신들을 보호하려 한다" 비판했다.
우레나 대변인은 "여기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며 "첫 번째 부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엡스타인의 범죄가 드러나기 전에 그와의 관계를 끊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 부류는 그 이후에도 관계를 지속한 사람들"이라며 "우리는 첫 번째 부류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클린턴은 엡스타인의 알려진 피해자들로부터 어떤 부적절한 행위로도 고발된 적이 없다.
파일 공개 방식 자체에 대해서도 여야 모두에서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심하게 가려진 일부 문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모든 파일을 즉각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법무부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추가 검토가 필요한 일부 자료는 향후 몇 주에 걸쳐 순차적으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의 억만장자 엡스타인은 자신의 자택과 별장에서 미성년자 수십 명을 비롯해 여성 다수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2019년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엡스타인에게 정·재계와 문화계 유력 인사들이 다수 포함된 성 접대 리스트가 있다는 음모론이 끊이지 않았다. 그의 사인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는 주장도 계속 제기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