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갑자기... 한미 관세협상 후속 조치, 예상 못한 암초 만났다

2025-12-20 11:12

미국, 한국의 디지털규제 추진에 대놓고 불만 표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가 한국의 디지털 규제 추진을 둘러싼 미국의 우려로 내년 초로 연기됐다는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의 보도가 나왔다. 이번 회의 연기는 관세협상 후속 조치로 주목받던 한미 FTA 공동위가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맞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강경한 디지털 규제 견제가 한국 압박의 새로운 카드로 등장했음을 시사한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9월 25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 쿠알라쿰푸르 국제컨벤션센터에서 ‘2025 아세안 경제장관회의’참석을 계기로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미국무역대표부 대표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9월 25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 쿠알라쿰푸르 국제컨벤션센터에서 ‘2025 아세안 경제장관회의’참석을 계기로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미국무역대표부 대표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19일(현지시각) 미국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미 무역대표부(USTR)는 전날 예정됐던 FTA 공동위 비공개회의를 취소했다. 소식통 3명을 인용한 이 보도는 트럼프 행정부가 차별적이라고 판단하는 디지털 제안을 한국이 추진한 것을 취소 사유로 들었다.

소식통 중 한 명은 "미 행정부는 한국이 디지털 분야를 비롯한 여러 우선 과제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또 다른 소식통은 디지털 정책에 대한 "몇몇 견해와 의견 차이"로 인해 회의가 내년 초로 연기됐으며, 회의 연기는 양측 모두 회의 한 번으로 이러한 차이를 해결하기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인정한 것을 반영한다고 폴리티코에 전했다.

미국이 우려하는 한국의 디지털 규제는 빅테크 기업의 독과점 횡포를 막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등에 대한 입법 추진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온플법 추진에 미국 재계뿐 아니라 의회까지 나서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다.

폴리티코 보도처럼 USTR이 한국의 디지털 규제 추진을 사유로 갑작스레 회의를 취소했다면 트럼프 행정부까지 동참해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USTR은 유럽연합(EU)이 최근 디지털서비스법(DSA)에 근거해 X에 1억2000만 유로(약 208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메타플랫폼, 구글, 애플도 조사에 나서는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을 정조준하자 지난 16일 '상응 조치'를 경고했다.

USTR은 "EU와 EU 회원국들이 차별적 수단을 통해 미국 서비스 제공업체의 경쟁력을 제한하고 저해하는 것을 계속 고집한다면 미국은 이러한 불합리한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EU 스타일의 전략을 추구하는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도 유사한 접근 방식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USTR은 이 성명에서 액센추어, DHL, 지멘스, SAP, 스포티파이, 미스트랄 AI 등 주요 유럽 기업들을 보복 조치의 잠재적 대상으로 명시하기도 했다. 미국은 현재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준비 중이며, 이는 관세를 포함한 무역 제재 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

미 하원 법사위원회는 지난 7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에 서한을 보내 온라인 플랫폼법이 미국 기술 기업들을 부당하게 겨냥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법사위 의원들은 이 법안이 EU 접근법을 모방하려 한다고 비판하며, 이 제안이 양국 간 광범위한 경제 및 전략적 협력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경고했다.

지난 2월 USTR 지명자 자격으로 청문회에 출석한 제이미슨 그리어는 한국과 다른 국가들이 미국 온라인 기술 기업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규제 조치를 취하는 것에 대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 서비스산업연합(CSI)도 USTR에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들을 크게 불리하게 만들 사전·사후 규제 제안을 철회하도록 촉구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2023년 말 시장 지배적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미국 이해관계자들의 반발 이후 지난 9월 새로운 입법 추진 대신 기존 독점규제법을 개정하는 새로운 제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CSI는 "새로운 제안도 미국 기업들을 불균형적으로 겨냥하고 미국 기업들이 한국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서비스에 편협하게 초점을 맞추는 등 사전 규제 제안의 문제적 요소들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는 이번 FTA 공동위 연기가 한미 간 사전에 의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연기하기로 협의된 것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국시간으로 지난 17일 기자간담회에서 "당초 연내 하기로 했었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양측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 내년 초 정도로 일정을 논의하며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 건설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디지털 규제 견제는 EU를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 11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한미 전략적 무역투자협정에서도 미국과 한국은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에 관한 법률과 정책에서 미국 기업들이 차별받지 않고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한다"고 약속한 바 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