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북한이 도발해도 경고사격 자제하라' 사실상 지시 논란

2025-12-19 10:39

북한 MDL 침범 대응 놓고 군 안팎 술렁

기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자료 사진.
기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자료 사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방부가 북한군의 군사분계선(MDL) 침범 시 사실상 경고사격을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안보 태세 약화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주권 침해 상황에서도 신중한 대응을 주문한 국방부의 방침을 두고 군 내부에서는 "안보를 정치적 고려에 종속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북한의 반복적인 MDL 월경에도 우리 군의 대응 수위만 낮추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19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10월 말부터 최소 두 차례 합동참모본부 지하의 지휘통제실을 찾아 "전방 작업 중인 북한군의 MDL 침범 시 경고사격을 할 때는 남북 간 충돌로 이어지지 않게끔 '상황 평가'를 면밀히 하라"고 강조했다. 유사시가 아닌데 합참이 아닌 국방부 관계자가 작전 중인 합참 통제실을 찾은 것 자체가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작전 지휘 계통을 무시하고 군사 작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합참 통제실을 국방부 고위 인사가 직접 방문한 것은 강력한 압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군의 작전 수행 절차는 경고방송→경고사격→조준사격 순서다. 100~50m 등 기준선을 정해 북한군의 남하 정도에 따라 순차 대응하는 게 원칙이다. 경고방송을 해도 계속 남하하면 K6 중기관총(구경 12.7㎜)으로 미리 정한 표적지를 향해 경고사격을 하게 된다. 경고사격 뒤에도 계속 남하해 일정 거리 안에 들어오면 이를 저지하기 위한 조준사격도 가능하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은 사실상 이런 우리 군의 대응 절차를 점검하라는 취지로 읽힌다. 교전수칙이나 작전수행 절차를 공식적으로 바꾸라는 직접 명령은 아니었더라도, 현장에서는 ‘경고사격을 최대한 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해석됐다는 것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도 내부 회의에서 “MDL 침범 대응 시 기존처럼 기계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상황에 따라 판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 역시 기존 절차에 따른 경고사격은 자제하란 취지로 이해됐다는 게 회의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실제 이런 방침이 하달된 뒤 북한군이 MDL을 침범했을 때 전방 부대에서 경고사격을 위한 상황평가 단계에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고 있다고 한다.

원칙적 대응을 중시하는 합참 내에서는 우려스러운 목소리도 감지된다. 경고사격 자제는 곧 '말로 타일러 돌려보내라'는 뜻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비역 장성은 매체에 "명시적인 자제 명령은 없었다 해도 최전방을 맡고 있는 지상작전사령부 예하 전방 부대로선 소극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기존 절차대로 경고사격을 했다가 문제가 생길 경우 전방 부대가 모든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선언에 따라 지난해 4월 이후 MDL 부근에선 북한군의 침범 사례가 늘고 있어 이런 방침에 더 우려가 제기되는 분위기다.

남북 간 우발적 충돌 등 사고를 막기 위해 국방부가 남북 군사회담을 지난달 17일 제안했지만, 북한은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방부의 사실상 경고사격 자제 지침은 아군의 대응 수위만 낮춘 격이 될 수 있다. 대북 유화 정책을 펴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 아니냐는 말도 군 안팎에서 나온다.

앞서 올해 8월 북한은 담화를 통해 우리 군의 경고사격을 "엄중 도발"로 규정하며 반발하기도 했다.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고정철 육군 중장 명의 담화에서 북한은 “한국군 호전광들이 남쪽 국경선 부근에서 우리 군인들에게 10여 발의 경고사격을 가하는 엄중한 도발을 했다”면서 “방해 행위가 지속될 경우 군사적 도발로 간주, 상응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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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안준영 기자 andrew@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