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린 어머니를 끝까지 괴롭히는 아버지를 본 아들의 분노는 결국 터지고야 말았다.
30년 넘게 이어진 가정폭력의 끝은 비극이었다. 술에 취해 아내와 자녀를 괴롭히던 70대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아들에게 법원이 징역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장기간 지속된 폭력과 우발성을 참작하면서도, 분노에 의한 살인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건은 2024년 10월 27일 서울의 한 주택에서 발생했다. A 씨는 이날 오후 술을 마시겠다며 고성을 지르는 아버지 B 씨의 폭언을 또다시 마주했다. B 씨는 평소 음주 후 아내와 자녀에게 욕설과 폭력을 일삼아 왔고, A 씨는 어린 시절부터 30년 넘게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왔다.

A 씨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독립하지 못했다. 집을 나설 경우, 암 투병 중인 어머니 C 씨가 아버지의 폭력에 홀로 노출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취업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는 것이 A 씨 측 설명이다.
사건 당일 B 씨는 오후 시간대부터 술을 요구하며 아내를 괴롭혔다. C 씨는 암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이를 보다 못한 A 씨가 제지에 나섰지만, B 씨는 오히려 A 씨에게 모욕적인 폭언을 퍼부었다.
A 씨는 격해진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욕조 근처에 놓여 있던 망치를 발견했고, 이후 망치를 들고 나와 B 씨의 머리를 가격했다. 첫 공격 이후에도 B 씨가 쓰러지지 않자, A 씨는 연이어 여러 차례 머리를 내리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직후 A 씨는 공격을 멈추고 쓰러진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나 B 씨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이후 A 씨는 어머니 C 씨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곧바로 경찰에 자수했다.

수사 과정에서 A 씨는 장기간 누적된 분노와 사건 당시의 우발성이 범행으로 이어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는 지난 5월 12일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B 씨가 오랜 기간 가정폭력을 저질러 왔다는 점과 A 씨의 살인의 고의가 미필적이었다는 점을 양형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가 오랫동안 가정폭력을 행사해 피고인과 배우자에게 극심한 고통을 준 가장이었던 점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이 사건 범행은 장래의 법익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피고인의 누적된 분노가 직접적인 동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사건 당일 상황을 고려해 “피고인이 아픈 모친을 쉬지 못하게 하던 피해자를 만류하는 과정에서 폭언을 듣고, 쌓여온 분노를 참지 못해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른 점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피고인의 모친 역시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원하지 않고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며 “피고인은 암 투병 중인 모친의 유일한 자식으로서 보호와 부양의 책임이 있는 점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장기간 가정폭력 피해가 누적된 상황에서 발생한 존속살해 사건에 대해 법원이 어떤 기준으로 책임과 참작 사유를 판단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