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과 여순10·19, 두 비극의 연대~전남·제주 교사들, '아픔의 땅'에서 '미래 교육'을 묻다

2025-12-16 02:52

단순 답사 넘어 '수업 설계'까지…12·3 사태 경험 속, 민주주의 지키는 '시민 역량' 교육의 길 모색

[위키트리 광주전남취재본부 노해섭 기자]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깊은 상흔으로 남아있는 제주4·3과 여순10·19. 수십 년간 '폭동'과 '반란'이라는 오명 속에 신음했던 두 비극의 땅에서, 전남과 제주의 교사들이 손을 맞잡고 '미래를 위한 역사 교육'의 해법을 찾아 나섰다.

‘제주4·3과 함께하는 여순10·19평화인권 교육 직무연수’에 참여한 교원들이 여순항쟁탑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제주4·3과 함께하는 여순10·19평화인권 교육 직무연수’에 참여한 교원들이 여순항쟁탑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과거사 학습을 넘어, '12·3 불법계엄 시도'와 같은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깨어있는 시민'으로 키워낼 것인가에 대한 교육계의 진지한 성찰과 응답이다.

전남도교육청은 제주교육청과 함께 지난 12일부터 이틀간, 여수와 순천의 여순사건 유적지에서 전남·제주 교원 공동 직무연수를 운영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 전남 교사들이 제주4·3 유적지를 찾았던 것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두 지역의 아픔을 서로의 눈으로 바라보고 공감하며 '평화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교실로 가져오기 위한 '교육 연대'의 일환이다.

#'기억의 현장'에서 '수업'을 설계하다

이번 연수는 흔한 역사 기행과 궤를 달리했다. 참여 교사들은 여순사건의 주요 사적지를 밟으며,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된 인권 침해의 참상을 직접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현장에서 곧바로 "이 비극을, 이 교훈을,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각자의 수업 사례를 나누고, 새로운 교육 방법을 모색하는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현장 교사뿐만 아니라 교육 정책을 수립하는 교육전문직원까지 함께 참여해, 논의의 깊이를 더했다.

#'지역의 비극'에서 '국가의 성찰'로

연수에 참여한 한 제주 교사는 "제주4·3을 공부하던 우리가 여순10·19의 현장에 서 보니, 국가 폭력의 문제가 결코 한 지역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음을 온몸으로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연대는 두 사건을 각각의 '지역사'로 분절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반드시 성찰해야 할 '국가사'의 관점으로 통합해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2·3 사태'의 교훈…왜 역사 교육인가?

전남교육청은 이번 연수가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특히, 2025년 12월 3일, 헌정 질서를 유린하려던 불법 계엄 시도가 국민의 저항과 헌법 시스템에 의해 저지된 경험은,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로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분별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시민적 역량'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값비싼 교훈이다.

김대중 전남교육감은 "과거의 아픔을 배우는 이유는, 12·3 사태와 같은 위기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아이들이 민주주의를 지켜낼 힘을 길러주기 위함"이라고 연수의 목적을 설명했다.

전남교육청은 앞으로도 제주뿐만 아니라 다른 시도교육청과의 연대를 통해, 교사들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헌법의 가치'와 '민주적 질서'를 가르칠 수 있는 전문성을 키우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데 교육이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home 노해섭 기자 noga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