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남은 두부 한 모가 전혀 다른 요리가 되는 순간은, 칼질에서 이미 결정된다.
두부볶음이라고 하면 으깨지거나 흐물해진 식감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두부를 깍두기처럼 아주 작은 네모로 썰어 조리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말랑한, 반찬과 안주 사이 어딘가에 있는 새로운 식감이 만들어진다. 특별한 재료 없이도 평범한 두부가 인상적인 요리가 되는 이유다.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두부 선택이다. 부침용이나 단단한 두부가 적합하다. 연두부나 찌개용 두부는 물기가 너무 많아 작은 크기로 썰었을 때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두부를 꺼낸 뒤에는 키친타월로 감싸고 손바닥으로 살짝 눌러 겉물기만 제거한다. 무게를 실어 오래 눌러둘 필요는 없다. 과도하게 물을 빼면 오히려 퍽퍽해진다.

칼질은 이 요리의 핵심이다. 두부를 한 입보다 더 작은 네모로 써는 것이 포인트다. 깍두기보다 약간 작은 크기가 적당하다. 크기가 균일해야 팬에 올렸을 때 익는 속도가 같고, 뒤집는 과정에서도 부서지지 않는다. 칼을 누르듯이 쓰지 말고, 날을 살짝 밀어내듯 자르면 단면이 깔끔하게 유지된다.
썬 두부는 바로 팬으로 가지 않는다. 접시에 펼쳐 5~10분 정도 공기 중에 두어 표면의 수분을 날린다. 이 과정을 거치면 전분이 훨씬 잘 붙고, 팬에서도 튀지 않는다. 급하다고 생략하면 두부 표면에 남은 수분 때문에 전분이 뭉치고, 팬에서 서로 달라붙기 쉽다.

전분가루는 정말 소량이면 충분하다. 두부 전체를 하얗게 덮을 필요는 없다. 비닐봉지나 넓은 볼에 두부를 넣고 전분을 한 티스푼 정도만 뿌린 뒤 살살 흔들어 코팅한다. 손으로 비비듯 섞으면 모서리가 깨지니 주의해야 한다. 전분은 바삭함을 더하는 역할이지, 튀김옷이 아니다.
팬은 반드시 충분히 달군다. 중불에서 식용유를 두르고, 팬 바닥이 고르게 달아오른 뒤 두부를 올린다. 이때 두부를 한꺼번에 쏟아붓지 말고, 서로 겹치지 않게 펼쳐야 한다. 처음부터 뒤집으려 들면 실패한다. 한 면이 노릇해질 때까지 그대로 두는 인내가 필요하다.

뒤집을 때는 젓가락보다 팬을 흔드는 방법이 낫다. 팬을 앞뒤로 살짝 흔들어 두부가 자연스럽게 굴러가듯 뒤집히게 하면 모양이 유지된다. 이 단계에서 소금 한 꼬집만 뿌려도 두부 자체의 고소함이 살아난다. 간장은 나중에 넣는 것이 좋다. 초반에 넣으면 수분이 나와 바삭함이 사라진다.
불 조절도 중요하다. 불이 너무 세면 전분만 타고 속은 데워지지 않는다. 반대로 약하면 두부에서 수분이 다시 나오며 눅눅해진다. 중불을 유지하며 색이 나면 불을 살짝 줄이는 정도가 가장 안정적이다. 마지막에 다진 마늘이나 파를 넣을 경우, 불을 끄기 직전에 넣어 향만 입힌다.

이렇게 만든 깍두기 두부볶음은 반찬으로도 좋고, 샐러드 토핑이나 덮밥 재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 양념을 더하고 싶다면 불을 끈 뒤 간장 몇 방울이나 버터 한 조각을 더하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조리 중에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이 요리를 성공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두부는 다루기 까다로운 재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작은 원칙만 지키면 실패할 이유가 없다. 크기, 물기, 전분, 불 조절. 이 네 가지만 기억하면 집에서도 바삭한 두부볶음을 만들 수 있다. 오늘 두부 한 모가 있다면, 국이나 찌개 대신 깍두기처럼 썰어 팬에 올려보자.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