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고구마를 숟가락으로 긁어보세요... 생각지도 못한 일 벌어져요

2025-12-15 11:15

알고 보니 효소 활성화를 원리 실생활에 적용했던 선조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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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이가 좋지 않은 어르신들은 생고구마를 먹을 때 독특한 방법을 썼다. 칼로 깎는 대신 숟가락으로 긁어서 먹는 어르신이 많았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먹으면 깎아서 먹을 때보다 훨씬 달았다. 겉보기엔 같은 고구마인데 왜 먹는 방법에 따라 단맛이 달랐을까. 단순히 씹는 부담을 줄이려 했던 이 행위가 결과적으로 고구마 자체의 단맛을 극대화해 혀가 느끼는 풍미를 배가시킨 것이다.

이가 좋지 않은 시골의 어르신들이 생고구마를 깎아서 먹는 대신 숟가락으로 긁어 먹었던 전통적인 방식에는 단순한 섭취 편의를 넘어선 과학적인 비밀이 숨어 있었다. 이는 고구마가 가진 전분 분해 효소인 베타 아밀라아제의 활성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고구마의 조직을 숟가락으로 긁어 물리적으로 파괴하면 내부의 전분과 효소가 접촉하는 표면적이 급격히 증가해 전분이 맥아당으로 분해되는 당화 과정이 촉진되기 때문이다.

고구마를 숟가락으로 긁으면 세포벽이 부서지면서 고구마 속 전분이 더 많이 노출된다. 이처럼 미세하게 파괴돼 으깨진 고구마 조각이나 즙은 입안의 침과 쉽게 섞이고, 당 성분이 혀의 미뢰에 효율적으로 전달돼 일반적인 방식으로 깎아 먹을 때보다 훨씬 더 달게 느껴지는 효과를 이뤘다. 반면 칼로 깎으면 고구마 조직이 깨끗하게 잘려 세포 구조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되면서 단맛을 덜 느끼게 된다.

생고구마의 단맛을 결정짓는 베타 아밀라아제는 전분을 맥아당으로 분해하는 효소로, 고구마를 익히는 과정뿐만 아니라 조직에 물리적인 손상이 가해지면 활성화된다. 즉 숟가락으로 고구마의 세포벽을 긁어 터뜨리는 순간 이 효소가 대량의 전분을 분해하기 시작하며, 이로 인해 단맛 성분인 맥아당이 짧은 시간에 다량 생성돼 더욱 강렬한 단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어르신들이 썼던 방식은 씹는 힘이 약해져 음식물 섭취가 불편한 상황에서도 고구마의 영양과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한 선조들의 지혜였다.

고구마는 조리 방법에 따라 영양 성분과 맛이 크게 달라진다. 고구마 100g당 열량은 생고구마 111kcal, 찐 고구마 114kcal, 군고구마 141kcal 정도다. 칼로리만 보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다른 자료에 따르면 생고구마 141kcal, 찐 고구마 163kcal, 군고구마 188kcal로 조리 방법에 따라 열량 차이가 상당하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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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고구마는 비교적 낮은 칼로리와 함께 혈당 지수가 낮다는 장점이 있다. 혈당 지수를 보면 생고구마는 50, 찐 고구마는 70, 군고구마는 90 정도로 점점 높아진다. 혈당 지수가 낮을수록 혈당이 천천히 오르기 때문에 당뇨병 예방이나 체중 관리에 유리하다. 생고구마는 비타민 C와 식이섬유가 풍부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또한 강한 항산화 작용을 하는 폴리페놀 성분이 파괴되지 않는다. 다만 소화율이 비교적 낮아 생으로 과량 섭취하면 속이 더부룩해질 수 있다.

베타카로틴 함량을 살펴보면 생고구마가 가장 우수하다. 국립농업과학원 국가표준 식품성분표에 의하면 베타카로틴 함량은 생고구마에 가장 많아 100g당 464μg이며, 찐 고구마에는 295μg 함유돼 있다. 베타카로틴은 항산화 작용을 하며 노화를 늦추고 폐 기능 증진에 도움을 준다.

찐 고구마는 수증기로 조리돼 수분 함량이 높아지며, 베타 아밀라아제가 활성화돼 단맛이 증가한다. 이 과정에서 비타민 C 일부가 손실될 수 있으나, 식이섬유는 잘 보존돼 소화 흡수가 용이해진다. 비타민 C 함량은 100g당 찐 고구마 22.99mg, 생고구마 10.81mg, 군고구마 10.47mg 순이다. 찐 고구마는 열을 가해도 비타민 C가 많이 남아 있어 면역력 증진에 효과적이다. 또한 비타민 E는 100g당 찐 고구마 0.6mg, 군고구마 0.57mg, 생고구마 0.23mg이 함유돼 있다.

가장 높은 단맛을 내는 것은 군고구마다. 군고구마는 오랫동안 고온인 130도 이상에 노출되면서 고구마 속의 수분이 증발해 당 성분이 농축될 뿐만 아니라, 장시간의 가열로 전분이 맥아당으로 변화하는 당화가 극대화돼 전체적인 단맛이 크게 상승한다. 다만 고온에서 조리돼 생고구마나 찐 고구마에 비해 비타민 C 손실률이 높으며, 단맛이 높아진 만큼 혈당 지수도 가장 높아지는 특성이 있다.

구운 고구마는 식이섬유 함량이 가장 높다. 식이섬유는 고구마를 구웠을 때 가장 많아 구운 고구마 100g당 4.2g이 들어 있으며 찐 고구마 3.8g, 생고구마 2.4g순이다. 식이섬유 함량은 오히려 생고구마보다 찐 고구마와 군고구마가 더 높았다. 식이섬유는 장 운동을 촉진하고 변비 예방에 도움을 준다.

고구마 / 뉴스1
고구마 / 뉴스1

칼륨 함량도 조리 방법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칼륨 함량은 군고구마 100g당 445mg으로 생고구마(375mg)보다 약 18% 더 많다. 찐 고구마가 100g당 428mg이다. 칼륨은 고혈압의 원인이 되는 나트륨과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해 혈압을 낮추고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을 준다. 마그네슘 함량은 군고구마 100g당 28mg으로 가장 많다. 마그네슘과 비타민 C 성분은 피로 물질의 생성을 억제해 스트레스 완화와 신경 안정에 도움을 준다.

다만 조리 과정에서 손실되는 영양소도 있다. 비타민 B군의 일종인 나이아신은 찌거나 굽는 등 가열 과정에서 많이 소실된다. 나이아신은 지방 분해 조효소로 고지혈증 개선과 혈압 조절에 효과가 있다. 밤고구마의 경우 생것, 찐 것, 삶은 것의 비타민 B1 함량이 100g당 각각 0.16mg, 0.14mg, 0.16mg, 비타민 B2 함량이 각각 0.08mg, 0.06mg, 0.07mg으로 나타났다.

생고구마를 자를 때 나오는 흰색 유액도 주목할 만하다. 생고구마를 자를 때 나오는 흰색 유액인 알라핀은 변을 부드럽게 해 장 운동을 촉진하게 한다. 이 성분은 변비 해소와 대장암 예방에 효과적이다.

고구마는 품종에 따라서도 영양 성분에 차이가 있다. 호박고구마에는 칼슘, 칼륨, 철분, 마그네슘, 요오드, 셀레늄 등 미네랄이 더 많이 들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식이섬유는 호박고구마 100g당 5.5g보다 밤고구마 100g당 6.9g에 더 많이 함유돼 있었다. 최근에는 항산화 물질을 강화한 고구마도 개발됐다. 2021년 국내 연구팀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해 일반 고구마보다 항산화 물질을 186배 이상 함유한 황금 고구마를 개발하기도 했다. 자색고구마는 안토시아닌 성분이 풍부해 항산화 활성이 높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