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가리지 않고 한국인들이 유독 열광하는 음식이 있다.

바로 물회다. 얼음 동동 띄운 육수에 생선회와 해산물, 각종 채소를 말아 매콤새콤하게 비벼 먹는 이 독특한 음식은 외국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여름을 대표하는 별미로 사랑받아왔다. 특히 동해안과 남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강원도 속초, 강릉, 경북 포항, 울진, 경남 통영, 부산,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의 물회가 지역별 특색을 담아 발전해왔다.
물회의 가장 큰 특징은 국물이 있다는 점이다. 생선회를 ‘국물에 말아 먹는다’는 방식은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물다. 일본의 경우 생선을 날 것으로 먹는 사시미 문화가 깊지만, 회는 대부분 간장이나 와사비와 함께 먹으며 육수를 부어 먹는 조리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 역시 날 생선보다 익힌 해산물을 선호하고, 찬 국물에 회를 넣는 방식은 위생 문제나 기후 조건 때문에 정착되지 못했다. 결국 ‘얼음물에 생회를 말아먹는 음식’은 사실상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식문화인 셈이다.
한국에서 물회가 가능하고 또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환경적·문화적 요인이 있다.

첫째, 차가운 물을 그대로 마시는 식수 문화가 있다. 일본이나 중국은 생수를 끓여 마시거나 따뜻하게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국은 예부터 냉수를 그대로 마셨고, 냉국, 냉면, 콩국수 등 차가운 국물 음식을 즐겨온 문화가 있다. 물회를 구성하는 차가운 육수는 이러한 한국인의 체질과 습관에 맞아떨어졌다.
둘째, 고추장, 고춧가루, 마늘, 식초 등 한국 고유의 강한 발효 양념들이 세균 증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며, 생해산물을 비교적 안전하게 날 것으로 섭취할 수 있게 해준다. 물회 양념에 사용되는 이 재료들은 단순한 맛의 요소를 넘어서, 조리 위생까지 고려된 전통의 결과물인 셈이다. 덕분에 찬 육수에 회를 풀어도 크게 문제되지 않고 오히려 건강한 여름 보양식으로 인식된다.
물회의 기원은 강원도 동해안 일대에서 어부들이 배 위에서 즉석으로 생선을 손질해 바닷물에 씻은 후, 고추장이나 된장, 식초 등을 넣어 간단하게 비벼 먹었던 데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엔 바닷물이 육수 역할을 했고, 냉장이 어려웠던 시절에는 차갑게 먹기보다 즉석에서 먹는 ‘회 비빔’에 가까운 음식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얼음 동동 띄운 물회는 현대식 냉장 기술과 기호 변화에 따라 만들어진 진화된 형태다.

현재는 전국 곳곳에서 지역 특산 해산물을 이용한 물회가 등장하고 있다. 속초에서는 광어와 우럭 같은 흰살생선을 주로 사용하며, 포항은 과일즙을 활용해 단맛을 강조하고, 제주도는 자리돔이나 한치, 문어 등 토속 해산물로 물회를 만든다. 또 해삼, 멍게, 전복, 낙지, 오징어까지 다양한 해산물이 들어가며, 일부는 육회나 과일을 넣은 변형 물회도 인기를 얻고 있다.
채소 구성 역시 다양하다. 오이, 배, 상추, 양배추, 미역, 깻잎 등이 기본으로 들어가며, 참기름, 겨자소스, 깨소금 등을 곁들여 풍미를 더한다. 육수는 물에 양념을 푸는 단순한 형태를 넘어서, 배나 사과, 매실즙, 자두즙 등 과일을 갈아 넣어 단맛과 신맛의 조화를 이룬 레시피로 발전해가고 있다. 냉면 육수와 혼합해 먹는 방식도 등장했고, 물회 전용 육수 제품도 출시되는 등 가정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가공 제품화도 활발하다.
이처럼 물회는 한국인의 기후, 입맛, 조리 환경, 위생 조건, 그리고 독특한 양념 문화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음식이다. 생선을 날것으로 섭취하면서도 얼음물에 육수를 붓고, 강한 양념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은 한국에서만 가능한 조리법이다.
결국 물회는 단지 시원한 여름 음식이 아닌, 한국의 식문화가 만들어낸 창조적 요리다. 회를 먹되 맵고 시원하게, 생물을 먹되 안전하게, 냉국처럼 먹되 해장 음식처럼 즐길 수 있는 이 특별한 메뉴는 한국인만의 입맛과 체질, 기후에 딱 맞아떨어지는 ‘우리만의 방식’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