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각) 현재의 남북관계에 대해 "언제 우발적 충돌이 벌어질지 모르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려면 인내심을 갖고 대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프리카·중동 4개국 순방 중인 이 대통령은 이날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튀르키예 앙카라로 향하는 공군 1호기 내에서 수행 기자단과 간담회를 열었다.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가 매우 적대적·대결적 양상으로 변했으며, 초보적 신뢰조차 없이 북한은 아주 극단적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은 군사분계선에 3중 철조망을 치고 있다. 6·25 전쟁 이후 수십 년 동안 하지 않은 일"이라며 "우리와 북한이 생각하는 경계선이 달라서 경계를 넘었다며 경고사격을 하는 일도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데도 모든 연결선이 끊겨서 우발적 충돌이 벌어져도 해결할 길이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 '철천지원수'로 남북관계를 규정하면서 대화와 접촉을 일절 거부하고 있다"며 "아무리 적대적인 국가 사이에서라도 비상연락망이나 핫라인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오른손으로 싸우더라도 왼손으로는 악수하는 것이 필요한데, 지금 남북은 완전히 단절된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비전향 장기수의 경우 90세가 넘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이들이 자기 고향 북한으로 가겠다는 것을 뭐 하러 막겠느냐"며 "잡아놓으면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 대통령은 이들의 송환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친 뒤 "그런데 그런 노력에도 북한이 반응조차 없다"고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의 이전 정부나 정치권 일각의 실책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흡수통일 같은 얘기를 왜 하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충격과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겠나"라며 "정치인들이 책임도 못 질 얘기를 쓸데없이 하면서 갈등만 격해지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이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을 겨냥해 "갑자기 통일을 얘기하면서 '대박' 이런 얘기를 하니까 북한이 '(남한에서) 쳐들어오는 것 아니냐'면서 철조망을 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또 "(이전 정부에서) 북한에 무인기를 보내 약을 올리니 (북한이) 얼마나 긴장하겠느냐"며 "대북방송은 쓸데없이 왜 하나. 서로 방송하고 서로 괴로워하는 그런 바보짓이 어디 있나"라고도 말했다. 이 대통령은 "국가가 업보를 쌓은 것이다. 이를 해소하려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일수록 대화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자꾸 피하면 쫓아가서라도 말을 붙여야 한다"며 "'군사분계선이 불명확해 총격전이 벌어질 수 있으니 대화해서 선을 긋자'는 제안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끊임없이 선의를 전하고 노력해 바늘구멍이라도 뚫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통일은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관점도 내비쳤다. 그는 "우리는 흡수통일을 할 생각이 없다. 먼저 북한과 대화하고, 평화 공존을 이루고 그다음에 (통일을) 얘기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간담회 중에는 긴장 완화 노력의 하나로 한미 연합군사훈련 축소 등을 검토할 수 있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이 대통령은 "북한이 가장 예민해하는 부분"이라며 "선제적으로 우리가 훈련 규모 축소나 연기를 검토하자는 주장도 일부에서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어떤 방향으로 갈지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 대통령은 "남북 간 평화체제가 확고하게 구축되면 훈련을 안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길게 보면 대한민국 방위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며 "또 가급적 군사훈련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 체제'가 되면 그때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돈이 드는 합동군사훈련을 안 해도 되지 않겠나"라고 언급했다.
이어 "상황에 따라 (훈련 축소·연기는 평화 체제 구축의) 결과가 될 수도,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며 "당장 (둘 중 어느 쪽이 될지는) 말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이 대통령은 전시작전권 전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의 4~5배의 국방비를 지출하는 세계 5위 군사력의 국가인데 일각에서는 마치 외부의 지원이 없으면 자체 방위를 못 하는 오해를 하거나 곡해를 유발하고 있다"며 "저는 이러한 상황을 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방산 투자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방위비를 GDP 대비 3.5% 늘린다고 하는 방침에 따라서 국방비를 증액해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번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조선산업 협업을 구체적으로 요청하며 인도, 한국, 일본 3국 간 조선 분야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조선산업 협업 요청에) 군수 분야도 들어있을 것으로 추측된다"며 "(방산 수주 관련) 실제 결과도 조만간 나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간담회는 약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외교와 순방에 한정해 기자단의 질문을 받았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튀르키예 앙카라 에센보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 대통령은 튀르키예 국부 묘소 방문을 시작으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정상회담 및 국빈 만찬을 갖는다. 25일에는 한국전 참전 기념탑에 헌화하고, 재외동포·지상사 오찬 간담회를 끝으로 7박 10일간의 4개국 순방 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