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국민MC 유재석으로 불린 '인물'…어제(23일) 별세, 향년 85세

2025-11-24 16:40

수려한 진행과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인물

1970~1980년대를 대표한 아나운서이자 예능 진행자, 이후 3선 국회의원과 정당 대표를 지낸 변웅전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5세.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유족은 변 전 의원이 서울 광진구 자양동 혜민병원에서 전날 별세했다고 알렸다.

변 전 의원은 충남 서산 출신으로, 서산농고를 졸업한 뒤 중앙대 심리학과 재학 중이던 1963년 KBS 아나운서로 방송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입사 초기부터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고, 그 시절 라디오와 TV가 주된 매체였던 만큼 그의 목소리와 진행 방식은 대중에게 빠르게 각인됐다.

KBS 입사 초기의 좌절…그러나 훗날 전화위복이 된 사건

최평웅 전 아나운서가 2023년 발간한 회고록 ‘마이크 뒤에 숨겨둔 이야기들’에 따르면 변 전 의원은 KBS 입사 초기 이른바 ‘방송사고’로 인해 지역 발령을 받는 큰 위기를 겪었다.

변웅전 전 의원 생전 모습. / 연합뉴스
변웅전 전 의원 생전 모습. / 연합뉴스

그는 ‘자정 대공뉴스’를 마친 뒤 술을 마셨고, 이어진 새벽 2시 뉴스 진행에서 방송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장기범 방송과장은 그를 지역 방송국으로 발령냈다. 변 전 의원에게는 사실상 좌천에 가까운 조치였지만, 그는 이후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든 선배의 결정”이라며 고마움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에서 선배들 틈에 가려 충분히 마이크를 잡을 기회를 얻지 못했던 그는 지역에서 공개방송과 좌담 프로그램 등을 맡으며 진행 능력을 크게 끌어올렸고, 이 경험이 그를 다시 서울로 호출하게 만들었다.

예능 MC로 전성기…“그 시대의 유재석”

서울 복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변 전 의원은 1969년 MBC로 스카우트됐다. 이후 당시 최고 예능 PD로 불렸던 김경태 PD에게 발탁되며 방송 인생의 전성기를 맞는다.

변웅전 아나운서 진행으로 방송된 7080 예능 '명랑운동회'. / MBC '명랑운동회'
변웅전 아나운서 진행으로 방송된 7080 예능 '명랑운동회'. / MBC '명랑운동회'

그는 ‘유쾌한 청백전’ ‘묘기대행진’ ‘명랑운동회’ 등 대한민국 예능사를 대표하는 프로그램들을 맡으며 특유의 호탕한 너털웃음, 매끄럽고 정확한 진행, 친근한 말투로 국민적 인기를 얻었다. 당시 주말 예능을 이끌던 그의 존재감은 지금의 유재석을 떠올리게 할 만큼 압도적이었고, 여러 매체에서는 그를 ‘1970~80년대의 국민MC’라 불렀다.

또한 그의 진행 아래 많은 스타 방송인이 데뷔하기도 했다. 최근 세상을 떠난 ‘뽀빠이’ 이상용(1944~2025)은 1973년 ‘유쾌한 청백전’ 보조 MC로 발탁되며 방송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변 전 의원은 업계 후배들의 성장에도 큰 영향을 남긴 인물로 기록된다.

정치권으로 향한 두 번째 커리어…3선 의원과 정당 대표까지

방송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변 전 의원은 1995년 자민련 창당준비위원회 대변인을 맡으며 정치권에 진출했다. 이후 1996년 15대 총선에서 충남 서산·태안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16대, 18대에서도 연이어 승리를 거두며 3선 의원이 됐다.

정당인 시절 고인의 모습. / 뉴스1
정당인 시절 고인의 모습. / 뉴스1

18대 국회에서는 보건복지가족위원장을 맡아 의료·복지 분야의 주요 법안 논의에 관여했고, 2011년에는 자유선진당 대표를 맡으며 당의 공식 활동을 이끌었다. 이 직책이 그의 마지막 공식 정치 활동으로 기록된다.

장례 및 유족 안내는…

유족으로는 부인 최명숙 씨, 아들 변지명·변지석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5호실에 마련되며, 25일 낮 12시부터 조문이 가능하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 장지는 판교 자하연이다.

다음은 고인의 '명랑운동회' 출연 당시 오프닝 영상이다.

유튜브, 무교동디제이DJ
home 권미정 기자 undecided@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