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트리 광주전남취재본부 노해섭 기자] 영암성과 사람들의 역사와 가치를 속속들이 담아낸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책으로 출간됐다.
영암군(군수 우승희)이 20일 영암성 연구 홍보 책자 <영암성, 영암 사람들>을 발간했다.
영암학회에 의뢰해 발간된 이 책은, 영암성 축성 배경에서 주요시설 배치 과정, 각 시설 규모와 기능, 성 안팎 발생 주요 사건 등까지 관련 연구 결과가 총망라돼 있다.
이전까지의 영암성 연구는 영암경찰서 뒤편의 성곽 발굴조사를 기초로한 성곽 축성 시기·구조 등에 머물러 있어, 이번 책자 출간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는 것이 지역사회의 대체적 평가다.
특히, 새 책은 도선국사의 풍수사상이 담긴 <도선국사답산기>의 정밀한 번역과 답사를 바탕으로, 현재의 영암성당터에 ‘영암의 혈처(穴處)’인 동헌이 들어선 내력을 밝히고 있다.
이 동헌을 중심으로 회의촌과 율산마을 등이 조성됐다는 점, 영암향교·사직단·성황사·여단 등은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를 근거로 동헌 상하좌우에 배치됐다는 점도 더하고 있다.
아울러 ‘낭주지관(朗州之館)’ 당호 편액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객사 건물이, 1909년 2월 20일 일본 헌병대의 실화로 사라지게 된 과정, 아전의 작청과 호장의 군사, 좌수의 향정이 자리한 위치와 기능, 대월루와 연지의 구조와 규모, 영보역과 형옥의 위치와 각 성문의 구조 등도 1915년 일제의 지적도 등과 대조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영암읍 해자(垓子)가 <도선국사답산기> 기술대로 현 공설운동장 자리인 영암읍 동문 앞 군더리방죽에서 남문 앞 회현방죽으로 흐르던 자연 하천이었다는 점이 현장 답사와 관련 지적도 등을 통해 밝혀진 것도 주목을 끌고 있다.
1555년 5월 25일, 을묘왜변 당시 향교가 있었던 영암읍 역리와 현 영암장터 어귀인 금교 주변이 양달사 의병장이 영암군민과 함께 영암성대첩의 승리를 일궈낸 역사적 현장이라는 사실도 밝히고 있다.
책 후반부는 영암군지와 조선총독부 자료, 개인문집·논문을 근거로, 조선 말부터 영암성이 헐리는 훼철 과정을 삽화·사진 자료로 설명해 이해를 돕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앞으로 영암성 복원 및 문화재 활용의 구체적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어 민선 8기 영암군의 공약사업인 ‘영암성 복원’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우승희 영암군수는 “이번에 발간된 책은 영암성을 제대로 알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영암군민과 함께 영암성의 가치를 알리고, 양달사 의병장과 영암성대첩 등 영암의 자랑스럽고 의로운 역사를 현창하는 사업을 이어가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