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일하면서 프로 복서로 활동하는 '의사 복서' 서려경(33·천안비트손정오복싱)의 세계 챔피언 등극이 또 무산됐다. 서려경은 21일 일본 고라쿠엔홀에서 열린 구로키 유코(33·일본)와 WBA 여자 미니멈급 타이틀전에서 0-3(94-96 94-96 94-96)으로 판정패를 당했다. 경험 많은 구로키를 일본 적지에서 맞아 선전했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다.
서려경은 2020년 프로복서로 데뷔한 이후 의사와 복서라는 두 개의 직업을 병행하며 화제를 모았다. 충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서려경은 순천향대 천안병원에서 진료를 보면서 프로복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주중에 환자들을 진료하고 퇴근 후와 주말에 복싱 훈련을 하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며 두 직업 모두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165cm의 큰 신장을 활용한 장거리 타격이 강점인 서려경은 2020년 7월 프로 데뷔전에서 TKO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화려한 복싱 경력을 쌓았다. 프로 데뷔 후 연승 행진을 이어간 서려경은 2023년 7월 KBM(한국복싱커미션) 여자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랐다. 당시 타이틀전에서도 상대를 2라운드 만에 KO시키며 실력을 입증했다.
특히 7전 전승에서 모두 KO승을 거두며 펀치력이 뛰어난 복서로 주목받았다. 상대를 압도하는 강력한 펀치력과 정확한 타격으로 한국 여자 복싱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지난해 3월에는 WIBA 미니멈급 세계 타이틀에 도전했으나 요시가와 리유나(23·일본)와 무승부를 기록했고, 이번에는 구로키를 상대로 두 번째 세계 타이틀 도전에 나섰다.
이번 경기의 상대였던 구로키는 2007년 데뷔해 WBC 미니멈급 챔피언과 WBA, WBO 아톰급 통합 챔피언을 지낸 강호다. 프로 16년 차의 베테랑으로서 풍부한 경험과 노련한 경기 운영 능력을 갖췄다. 일본 여자 복싱계를 대표하는 선수인 그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의 경기 경험도 풍부했다.
서려경은 경기 초반부터 적극적인 공격을 펼쳤다. 자신의 장점인 장거리 타격을 활용해 구로키를 압박했고, 강력한 펀치로 위협했다. 하지만 구로키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려경의 공격을 잘 막아내며 효과적인 카운터펀치를 구사했다. 경기는 접전 양상을 보였지만 세 심판 모두 94-96으로 구로키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서려경의 프로 통산 전적은 이날 패배로 11전 7승(7KO) 3무 1패가 됐다.
서려경은 이번 패배에도 불구하고 세계 타이틀 도전의 꿈을 접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22일 인스타그램에서 “판정패했지만 멋진 경기를 해서 아쉬움은 없다. 이번 경기로 또 배운 점이 있고 더 성장할 발판이 될 것 같다. 당직을 서면서 운동을 힘들게 했고 앞으로 또 계속해나갈 생각에 아득하지만 도전은 계속된다”라고 말했다.
서려경은 2023년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세계 타이틀 도전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당시 유재석은 서려경을 '현역 여자 의사 중 싸움 1짱'이라고 소개했다.
서려경은 복싱을 시작하게 된 계기로 “제가 원래 운동을 좋아하니까 같이 일하시던 마취통증의학과 선배님이 추천해서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의사와 프로복서를 병행하는 데 대해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을 해서 회진 돌고 작업하고 여러 일을 하다가 퇴근해서 운동을 가면 진이 빠지는 느낌이 있는데 해야 하니깐 한다”라며 승부욕을 드러냈다.
의사와 복서라는 두 직업을 병행하면서 한국 여자 복싱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서려경의 도전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