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농사 시작을 알리는 고추 파종기가 다가왔다. 고추는 한국인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민 식재료로 자리 잡았다. 김치, 고추장, 깍두기 등 고추가 들어가지 않는 한국 요리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놀랍게도 고추 원산지는 우리나라가 아니다. 사실 고추는 중남미 지역에서 유래한 작물로, 한반도에 전해진 것은 불과 몇 백 년 전 일이다. 그렇다면 고추는 어떻게 한국 요리 핵심 재료로 자리 잡았을까?
고추는 원래 중남미 지역에서 자생하던 작물이다. 열대 기후에서 잘 자라는 이 식물은 15세기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전 세계로 전파됐다. 고추가 한반도에 유입된 시기는 16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전후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이미 일부 지역에서 소규모로 재배되고 있었으나 임진왜란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퍼졌다고도 한다.
18세기 중반이 되자 고추는 조선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식재료로 자리 잡았다. '조선왕조실록' 순조 32년(1832) 기록에서는 이미 고추가 생강, 마늘, 파와 함께 조선의 일상적인 양념으로 사용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추가 한국 식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은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오늘날 매운 김치나 고추장이 등장한 것은 조선 후기 이후의 일로, 불과 200~300년 전이다. 고춧가루는 그 용도에 따라 굵은 고춧가루는 김치류에, 고운 고춧가루는 고추장이나 양념장에 사용하는 등 한국 요리 전반에 필수적인 재료로 자리 잡았다.
매운맛은 단순한 양념을 넘어 한국인 정체성을 상징하는 요소가 됐다. 고추는 한국인 밥상에 색과 맛을 더하며 음식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비록 고추는 한국이 원산지가 아니지만, 오늘날 한국인 식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김치, 고추장, 고춧가루 등 고추가 들어간 음식은 한국의 매운맛을 대표하며 전 세계적으로도 사랑받고 있다. 고추는 한국인 입맛을 완성한 식재료로 자리 잡았다. 한반도 기후와 농업 환경에 적응하며 독특한 매운맛을 만들어낸 고추는 한국 요리 아이덴티티를 완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고추는 재배 과정이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는 작물로 알려져 있다. 고추는 1월 말 씨를 뿌린 후 약 90일간 모종을 키워야 하며, 본밭에 심고 나서도 8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여러 차례 수확해야 한다. 병충해에도 민감해 주기적으로 약을 치지 않으면 병에 걸리기 쉽고, 기온 변화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수확 과정은 번거롭기로 유명하다. 고추는 한 번에 모두 익지 않아 여러 차례에 걸쳐 수확해야 하며, 건조 과정 역시 까다롭다. 태양 아래에서 자연 건조하는 경우 날씨에 민감해 비가 오면 곧바로 걷어야 하며, 기계 건조는 비용과 시간이 더 든다. 이러한 재배의 어려움이 국산 고춧가루의 높은 가격을 설명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