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전문의가 트라우마 치료에는 최소 '한달'은 필요하다고 했다.
16일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운영된 제주항공 참사 통합심리지원단이 접수한 심리상담 건수는 13일 기준 총 670건이다. 하루 평균 약 44.7명이 상담을 받은 거다.
유가족, 소방관, 경찰, 현장 종사자, 추모객 등이다.
트라우마란 일반적인 스트레스의 범주를 넘어 충격적·압도적 경험으로 사람의 몸과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사건을 의미한다.의료계에 따르면 참사 직후 한 달 동안 나타나는 혼란, 불안, 수면 장애 등은 과도한 스트레스에 대한 일종의 방어 활동으로 정상적인 신체 반응이다.
사건에 대한 반복적 회상·악몽, 심리적·신체적 고통과 같은 재경험, 사건과 관련된 장소·사람에 대한 회피, 과도한 죄책감 및 수치심, 과민성·공격성 증가 등이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트라우마를 잘 극복하려면 초기 치료 시기를 놓쳐선 안 된다.
16일 석정호 강남세브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에 "참사를 겪은 후 한 달은 심장마비와 같이 심리적 기능이 마비돼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혼돈의 시기이자 가장 안정이 필요한 시기"라고 했다.
석 교수는 "이 골든타임에 '심리적 응급처치'(PFA)가 시행돼야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PFA는 트라우마나 위기 사건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제공하는 인도적, 지지적, 실질적 지원을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참사 직후에 PFA를 적용하라고 권하고 있다.
PFA의 행동원칙은 주변 상황이 안전한지 확인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관찰하기, 경청하며 공감하기,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하기 등이다.
석 교수는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게 핵심"이라며 "후유증을 최대한 줄여가면서 온전히 회복하기 위해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고 했다.
홍현주 한림대성신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감정은 피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며 "감정의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잘 소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라고 하기보다 '불안할 수 있어'라며 지금 느끼는 감정 반응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알려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갑작스러운 사고는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는 안전한지, 인간을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며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회복을 촉진한다"고 했다.
백 교수는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면 감정을 더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어 더 건강한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이러한 사건을 다시 겪지 않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족 혹은 친구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주는 게 가장 회복적"이라고 했다.
백 교수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 '산 사람은 살아야죠'와 같은 말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의 고통을 몰라주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며 "'나'를 주어로 얘기하기보다 고통을 겪은 이들이 얘기할 수 있도록 끌어내는 게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