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엔진 고장이 랜딩기어 문제와 무관하다는 기존 입장과 달리 엔진이 모두 고장 날 경우 유압 계통을 통해 랜딩기어 작동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국토부는 3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엔진 이상이 랜딩기어 미작동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엔진 두 개가 모두 고장 나면 유압 계통에 이상이 생겨 랜딩기어 작동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도 “모든 시스템이 고장 나더라도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는 레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는 엔진이 고장 나고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한 발언”이라며 “조종석에서 레버 조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블랙박스 분석을 통해 정확히 밝혀야 한다”고 했다.
국토부는 사고 직후 브리핑에서 “엔진 고장과 랜딩기어 고장은 상호 연동되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연관성을 부정한 바 있다. 이번 브리핑에서 그 가능성을 일부 인정하며 입장을 수정한 것이다.
참사 피해를 키운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에 대해서도 국토부는 입장을 밝혔다. 국토부는 “로컬라이저는 처음 설계 당시부터 콘크리트 둔덕 형태로 지지대를 설치한 구조였다”며 이후 개량 사업에서 말뚝 형태의 지지대를 보강하고 두께 30㎝ 콘크리트를 추가로 덧댔다고 설명했다.
콘크리트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선 “방위각 시설은 원래 안테나 기능만 하면 되는 구조지만, 지지대는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지대 재료는 안전 구역 외부에 있어 규제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한 둔덕 형태의 설계 이유에 대해서는 “과거 여러 공항에서 시공된 방식이 서로 조금씩 다르다”며 “최초 설계 시 최적의 방식을 찾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둔덕이 약 2m가량 돌출된 점에 대해서는 “시설이 활주로 높이 이상으로 올라와야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며 전파 각도를 확보하기 위해 안테나를 높게 설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둔덕이 기울어진 지면과 수평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기존 해석과도 일치하는 설명을 내놓은 셈이다.
국토부는 둔덕 뒤 외벽이 충돌로 인한 피해를 키운 원인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국토부는 사고기가 ‘01 활주로’ 대신 ‘19 활주로’로 착륙 지점이 변경된 이유에 대해선 “바람 방향에 따라 활주로 사용이 결정된다”며 “제주 공항 특성상 편서풍이 우세해 북쪽 방향으로 착륙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고 현장을 찾은 미국 조사단은 사고 기체보다 방위각 시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연방항공청(FAA), 보잉사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조사단은 이날 사고기 인근에 도착해 로컬라이저 구조물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조사단은 사고기가 날아온 방향을 가리키며 충돌로 파손된 로컬라이저를 세밀히 관찰했다. 둔덕 위에 올라가 구조물을 손으로 만지거나 발로 확인하고 촬영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일부 조사단원은 바닥에 떨어진 로컬라이저 잔해를 가리키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미국 조사단은 로컬라이저 위에서 약 20분을 머물며 사고기 외부를 관찰한 뒤 사고기 주변 잔해와 유류품이 보존된 현장을 짧게 둘러보고 자리를 떠났다. 이번 참사에서 로컬라이저는 많은 인명피해를 낳은 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사고 당시 비행기는 랜딩기어를 펼치지 못한 상태에서 착륙을 시도했고 활주로를 미끄러지다 로컬라이저와 충돌하면서 반파됐다. 이후 화염이 발생해 참사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