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소속 공작 요원들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몽골에서 주몽골 북한대사관과 접촉하는 공작을 벌였다고 한겨레가 27일 보도했다. 12·3 계엄 기획자들이 계엄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북풍 공작을 벌이려 했던 게 아니냔 말이 나온다. 북풍이란 북한의 도발과 위협을 정치나 선거에 이용하는 것을 뜻한다.
매체에 따르면, 정보사 소속 ㄱ 중령과 ㄴ 소령이 계엄 선포 10여일 전인 지난달 말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로 출장을 떠났다. 몽골엔 한국대사관과 북한대사관이 나란히 위치해 있다. ㄱ 중령과 ㄴ 소령은 주몽골 북한대사관과 접촉하기 위해 몽골 정부 쪽 인사를 상대로 공작을 벌이다 현지 정보기관에 붙잡혔다. 실제로 이들의 출장보고서엔 북한대사관이 공작 대상으로 명시돼 있다.
다만 ㄱ 중령과 ㄴ 소령은 북한대사관과 직접적으로 접촉하진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몽골 정부 관계자로 보이는 현지 인사를 만나는 과정에서 몽골 정보기관에 노출됐다. 몽골 측은 이들이 한겨울 관광 비자로 입국해 정부 인사들을 자주 만나는 점을 수상히 여겨 체포했다고 한다.
몽골 정보당국은 체포 후 이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대사관에 협조를 요청했다. 정보사는 이들이 소속 요원임을 인정하며 즉각 송환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 문상호 정보사령관이 직접 나서 구명 활동을 주도한 덕분에 ㄱ 중령과 ㄴ 소령은 비교적 신속히 풀려날 수 있었다. 귀국한 뒤 이들은 국가정보원에서 체포 경위에 대한 조사를 받은 후 본래 업무에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ㄱ 중령과 ㄴ 소령이 몽골에서 수행하려 했던 임무의 구체적인 목적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단순한 정보 수집 이상의 중대 임무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 7월 비밀요원 명단 유출 사건 이후 정보사가 모든 해외 공작 활동을 전면 중단했음에도 이들이 급히 파견됐기 때문이다. 문 사령관이 직접 구명에 나섰다는 것도 이 같은 추측을 부채질한다.
일각에선 이들이 북풍 공작을 하려 했던 게 아니냔 말이 나온다. 실제로 계엄 주도자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수첩에선 ‘NLL(북방한계선) 북한 공격 유도’라는 메모가 발견된 바 있다.
정보사 요원들이 북한과 접촉하려 한 정황이 드러난 만큼 비상계엄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접경지대에서 북한과 군사적 충돌 상황을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여러 경로로 구상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앞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 합동참모본부(합참) 전투통제실에서 열린 대북 전술 토의에서 북한과의 접경지대 충돌을 유도하려 했지만 합참 지휘부가 반대하며 실행되지 못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총풍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총풍 사건이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 진영에 유리한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당시 청와대 행정관을 비롯한 3명이 북한 측 인사에게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뜻한다. 사전 모의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으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관련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북풍과 관련해서 대표적으로 회자되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