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확보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자필 수첩에서 국회 봉쇄와 정치인 등 주요 인물의 신변 처리 방안이 메모돼 있던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이 수첩엔 북방한계선(NLL)에서 북한의 공격을 유도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이하 특수단)은 23일 언론 브리핑에서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 ‘국회 봉쇄’라는 표현과 함께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노동조합, 판사, 공무원 등을 ‘수거 대상’으로 지칭한 기록이 적혀 있다고 밝혔다. 특수단은 이 ‘수거’라는 표현이 사실상 체포를 뜻한다고 보고 있다면서 체포 후 이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메모도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은 그가 퇴역 후 경기 안산시의 점집에 머무르며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바닥 크기의 60~70페이지짜리 수첩은 노 전 사령관을 긴급 체포한 뒤 점집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해당 수첩에는 “NLL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라는 표현이 기록돼 있어 계엄 실행을 위해 북한을 자극하려 했다는 의혹과 연결되고 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이 계엄 실행을 위해 북한 도발을 유도하려 했다는 기존 의혹과 부합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경찰은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 적힌 내용들이 계엄 시나리오와 연계돼 있다고 판단하고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특수단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계엄 준비 과정에서 별도의 조직인 ‘수사 2단’을 만든 것으로 파악됐다. 합동수사본부 산하에 설치된 비밀 조직인 이 조직은 총 60여 명의 인원으로 구성됐으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확보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한다. 경찰은 해당 조직이 포고령 발령 후 인사 발령 문건까지 작성한 사실을 확인했으며, 관련 문건을 국방부에서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첩에서 포고령 관련 내용은 발견되지 않았고, 수사단장은 누구인지 등 세부 사항은 공개되지 않았다.
경찰은 계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휴대전화 통화 기록도 확보했다. 특수단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특정 휴대전화 번호와 관련된 통화 내역을 분석 중”이라며, 현재까지 계엄 비선으로 지목된 노 전 사령관과의 직접적인 통화 내역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공조수사본부는 대통령실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군사 기밀을 이유로 거부당했다. 경찰은 윤 대통령의 비화폰 기록 보존을 요청하는 공문을 대통령 경호처와 대통령 비서실에 보냈으나, 비화폰 압수수색은 아직 진행되지 못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노 전 사령관과 문상호 정보사령관이 안산의 한 롯데리아에서 비밀 회동을 했다는 진술도 확보됐다. 이 회동에서는 계엄 실행을 위한 사전 모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단 관계자는 "1, 2차 롯데리아 회동이 수사 2단 조직을 위한 논의 자리였으며, 이 과정에서 계엄 준비에 필요한 부서를 나누는 작업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윤 대통령에게 2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석을 요구한 상태다. 윤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을 경우 추가 조치에 대해선 “그때 가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경찰은 또한 내란 공범 혐의로 고발된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두 차례 출석을 요구했으나, 아직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당사로 집결시키는 방식으로 계엄 해제를 막으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에 대한 조사와 더불어,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서 확인된 계엄 준비 정황을 바탕으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