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배드민턴협회가 계약직 트레이너들을 상대로 부당노동 행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배드민턴협회가 최근 기간제 근로자인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들을 계약기간 만료로 내보내면서 대한체육회 지침을 어기고 근로기간 24개월을 초과한 트레이너에 대해 관련법을 위반(부당노동 행위)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스포츠조선이 19일 보도했다.
협회는 지난 10월 17일 덴마크오픈 출장 중이던 트레이너 4명(전담팀·영상분석담당 1명 포함)에게 이메일로 계약 만료 통보서를 보내며 사실상 '퇴사'를 통보했다.
이들의 계약기간은 10월 31일까지로, 3명은 김학균 대표팀 감독 부임(2022년 11월 1일)과 함께 2년 계약직으로 채용됐으며 나머지 1명은 2022년 5월부터 30개월째 근무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트레이너들은 협회 지시를 받고 11월에 잇달아 열리는 3개의 국제대회 참가 신청용 서류 제출 등 준비를 마친 터라 당연히 계약 갱신이 되는 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노동 관계법이나 대법원 판례에서 '근로계약 갱신기대권'이 인정될 경우 사용자가 이를 어기면 부당노동 행위로 판단한다.
하지만 협회는 계약 갱신 시 사용기간 2년 초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청년 근로자들을 실직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또 협회는 대한체육회의 지침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체육회는 지난해 2월 각 종목단체에 행정 개선 공문을 보내 '기존 최대 11개월 단위 계약기간을 1년 이상으로 늘리고 퇴직금과 4대 보험도 보상하라'는 요지의 개선안을 하달했다. 그러면서 기존 근무자는 지난해 3월 1일 자로 표준계약서로 재작성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총 근로계약기간 2년 초과 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이라는 사항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각 국가대표팀 트레이너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보호와 청년 취업을 권장하자는 시대적 노동 환경 변화에 따른 조치였다.
그러나 협회는 이 지침을 무려 1년 6개월간 무시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대표팀 관계자와 퇴직 트레이너를 대상으로 확인한 결과, 트레이너들은 계약 만료 통보를 받기까지 협회 측으로부터 표준계약서와 관련해 아무런 안내도 받지 못했다.
이번에 퇴직한 A씨는 "표준계약서에 관해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듣고 뒤늦게 알았지만 협회에 문제 제기를 하면 계약직이라 혹시 불이익당할까 봐 말을 못 했다"라며 "어디에, 어떻게 구제를 호소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그냥 허탈한 마음에 실직 상태로 지내고 있다"라고 매체에 털어놨다.
협회는 근속기간 2년 초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트레이너 김 모 씨를 이번에 다른 트레이너들과 함께 사실상 해고하며 기간제법과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근로기준법에서 2년 초과 사용 시 정당한 이유가 없는 고용 종료는 부당해고에 해당하므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협회 관계자는 "대한체육회에서 표준계약서 관련 그런 공문이 내려왔는지 잘 몰랐다"라며 "담당 실무자가 해외 출장 중인데 돌아오면 진상을 확인해 보고 알려주겠다"라고 매체에 해명했지만 일주일 넘게 아무런 답변을 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협회는 2024 파리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등 선수들을 출연료와 동의서도 없이 후원기업 광고에 강제로 동원하게 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지난 10월 2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배드민턴협회는 지난해 요넥스와 후원 계약을 맺고 소속 선수들의 14일간 무상홍보 출연을 약속했다.
협회는 국가대표뿐만 아니라 13세 이하 꿈나무 선수까지 이 홍보 계약에 동원했으나 선수들의 동의를 받지도 않았을뿐더러 출연료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선수들은 협회가 일방적으로 체결한 후원계약서 내용대로 화보 촬영, 프로모션행사, 광고촬영에 개인 또는 단체로 동원됐다.
안세영 또한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기간 중 세 차례나 화보 촬영에 동원됐고 일본오픈 뒤엔 후원사 프로모션 행사에 동원됐다. 지난해 7월엔 아시안게임 출전선수 20명, 지난 5월엔 올림픽 출전선수 11명이 모델료나 출연료 없이 요넥스의 기업 홍보 광고에 무상 출연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협회 측은 선수들의 광고 무상 출연에 대해 '내규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 측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체육회에 무상으로 모델로 출연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라며 "(광고 출연은) 후원사가 선수와 개별 광고 계약을 맺고 진행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정 의원은 "국가대표를 지원해야 할 협회가 돈벌이에 (선수들을) 동원했다"라며 "선수들은 협회가 공짜로 부려 먹을 수 있는 노예가 아니다. 파렴치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