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내놓은 ‘질서 있는 퇴진’ 방안이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니냔 말이 나온다. 국민의힘에서 친윤계 의원들이 대놓고 반대하는 데다 대통령실도 하야보단 법대로 탄핵심판대에 오르겠다는 기류가 강하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12·3 내란 사태 수습책으로 ‘질서 있는 퇴진’을 제안하며 의원들에 대한 설득에 나섰지만 당내 의견을 모으는 데 실패했다. 10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그는 내년 2월이나 3월에 윤석열 대통령의 하야를 골자로 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난상토론으로 끝났다.
핵심은 대통령의 직무 배제와 자진 하야 약속이었다. 하지만 이를 강제할 법적 수단이 없다는 점이 맹점으로 지적됐다. 일부 의원은 윤 대통령에게 서명을 받은 문서를 받아내자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헌법적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결국 이 방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실도 하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하야보다는 법과 절차를 따르는 탄핵이 더 낫다"며 "오히려 탄핵 과정에서 기각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4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대통령실은 이에 대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친윤계가 이번 사태를 한 대표 체제 붕괴의 계기로 삼으려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한 대표 리더십은 흔들리고 있다. 당헌·당규에 따르면 최고위원 4명이 동시에 사퇴하면 지도부는 자동 해체된다. 이를 활용해 친윤계가 친한계 최고위원들의 사퇴를 유도하고 새 체제를 구축하려는 계획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윤계는 한 대표를 윤리위원회에 회부해 징계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현 개혁신당 의원)도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은 사례가 있기에 이를 활용해 한 대표를 권한에서 배제하려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한 대표가 물러나면 서열 2위인 원내대표가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12일 예정된 원내대표 경선은 친윤계와 반윤계 간의 치열한 대결로 압축됐다. 권성동 의원과 김태호 의원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친윤계가 승리할 경우 당 장악력을 높이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탄핵안 무산 직후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해 한 대표가 꺼낸 ‘질서 있는 퇴진’ 카드가 현실적 한계와 당내 반발에 부딪히며 설득력을 잃음에 따라 한 대표 리더십에 대한 회의감이 당 안팎으로 확산하고 있다. 친윤계가 이를 빌미로 한 대표 체제를 무너뜨리고 당내 권력 재편을 가속화하면 탄핵 정국을 싸고 정치권에서 극심한 혼란이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