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삶 살았던 인물… 태권도 '대부' 박영길 씨 별세, 향년 83세

2024-12-10 09:38

태권도 보급 위해 한평생 쉼 없이 움직였던 박영길 대사범

이탈리아 태권도 초석을 다지고 평생을 태권도 발전에 헌신했던 박영길 이탈리아태권도협회(FITA) 종신 명예회장이 지난 7일(이하 현지 시각) 오후 7시 20분쯤 로마 한 병원에서 급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향년 83세. 그의 별세 소식은 태권도계뿐 아니라 재이탈리아 한인 사회에도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다. 이 소식은 최근 연합뉴스 보도 등을 통해 국내에 전해졌다.

박영길 이탈리아태권도협회(FITA) 종신 명예회장 별세. 향년 83세. / 유족 제공-연합뉴스
박영길 이탈리아태권도협회(FITA) 종신 명예회장 별세. 향년 83세. / 유족 제공-연합뉴스

1967년 박 회장은 스물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태권도를 알리기 위해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태권도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무예였고, 일본 가라테가 이미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처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태권도를 정착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평생을 바쳤다.

▣ '나폴리의 이소룡'으로 불린 태권도 전도사

박 회장이 이탈리아 태권도 '대부'로 자리 잡는 데에는 몇 가지 전설적인 일화가 있었다. 초창기에 가라테 사범이 제자들을 이끌고 도장을 찾아와 결투를 신청한 사건이 특히 유명하다. 박 회장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단 한 번의 돌려차기로 가라테 수련생을 제압하며 태권도 우수성을 입증했다. 이 사건은 나폴리 일대에 빠르게 퍼졌고, 그는 곧 '칸구로'(캥거루)와 '나폴리의 이소룡'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많은 제자를 받게 되었다.

이후 그는 이탈리아 전역에 태권도를 보급하며 수백 개의 도장을 설립했다. 최남단 시칠리아섬에서 북부 토리노, 산마리노 공국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또한 이탈리아올림픽위원회(CONI)에 정식 등록된 FITA 역시 박 회장 노력으로 설립됐다.

▣ 태권도를 통한 인격 수양 강조

박 회장은 태권도를 단순히 신체를 단련하는 무술로 보지 않았다. 그는 "태권도는 삶의 예술이며,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무도"라며 인격 수양과 삶의 철학을 중시했다. 이러한 그의 태권도 철학은 이탈리아 태권도계에서 큰 공감을 얻었다. 그의 제자들 중 다수는 세계적인 태권도 선수와 지도자로 성장했으며, 현재 FITA를 이끄는 안젤로 치토 회장 역시 그의 제자다.

치토 회장은 2016년 취임 후 박 회장에게 종신 명예회장 칭호를 부여하며 그의 공로를 기렸다. 그는 이날 FITA 공식 홈페이지에 "박 회장은 우리의 스승이자 영원한 마에스트로"라며 "그의 열정과 가르침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고인 생전 모습. / 유족 제공-연합뉴스
고인 생전 모습. / 유족 제공-연합뉴스

▣ 태권도를 넘어 한인 사회 중심으로

박 회장은 무도인으로서 역할을 넘어 재이탈리아 한인 사회에서도 중요한 존재였다. 그는 오랜 기간 재이탈리아 한인회장을 맡았고, 1994년부터 2005년까지는 한글학교 초대 교장을 지내며 한인들의 문화적 뿌리를 지키는 데도 앞장섰다.

그는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태권도 보급을 위해 쉼 없이 움직였다. 최근에는 북부 트리에스테에서 태권도 교습을 열던 중 피로 누적으로 건강이 악화되었고, 끝내 병세를 이기지 못했다.

▣ 가족과 제자들에게 남긴 유산

박 회장은 부인 박창성 여사와 1남 1녀를 뒀다. 아들 이태 씨는 이탈리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장례식은 오는 11일 오전 11시 로마 산 파올로 엔트로 레 마루 교회에서 열릴 예정이며, 장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치토 회장은 추모사에서 "스승님 태권도 전파 사명은 하늘나라에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길 회장은 태권도의 위상을 높인 지도자이자 한인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의 열정과 업적은 태권도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길이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고인이 생전 이탈리아에서 태권도 가르치던 모습. / 유족 제공-연합뉴스
고인이 생전 이탈리아에서 태권도 가르치던 모습. / 유족 제공-연합뉴스
home 권미정 기자 undecided@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