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이 쏘아 올린 공이 ‘체육 대통령’을 바꾸는 결과로 이어질까.
유승민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이자 전 대한탁구협회장이 “위기에 빠진 한국 체육을 바꿔야 한다”며 대한체육회장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유승민 전 회장은 3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공식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체육회가 체육인들을 대변해야 할 위치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강한 변화를 예고했다.
유승민 전 회장은 “리더십은 사라지고 체육을 대표해 목소리를 내야 할 사람들이 눈치를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체육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 체육의 미래도 없다”며 출마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금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다시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대한체육회장에 나선다”며 각오를 다졌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유승민 전 회장은 이후 국제 스포츠 행정 분야에서 경험을 쌓으며 IOC 선수위원과 대한탁구협회장을 역임했다. 특히 2019년 조양호 전 회장의 사퇴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대한탁구협회장에 선출돼 2021년 재선까지 성공했다. 그는 이번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준비하며 지난 9월 대한탁구협회장직을 내려놨다.
유승민 전 회장은 한국 체육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여러 공약을 내세웠다. △지방 체육회와 종목단체의 자립성 확보 △선수와 지도자를 지원하는 ‘올 케어’ 시스템 도입 △학교 체육 활성화 △생활체육 전문화로 선진 스포츠 환경 구축 △글로벌 중심으로 자리 잡는 ‘K-스포츠’ △체육회의 자체 수익 플랫폼 구축 등이 포함됐다.
현 대한체육회장 이기흥의 3선 도전에 대한 견제도 빠지지 않았다. 유승민 전 회장은 직접적으로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현 대한체육회 리더십을 비판하며 “지금 대한체육회는 변화가 필요하다. 외부의 강압적인 변화가 아닌 체육인이 주도하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수 시절 중국 탁구의 강세에도 승부를 피하지 않았던 과거를 떠올리며 “지금도 마찬가지로 정면 돌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은 업무 방해, 금품 수수, 횡령 등 여러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10월 국무조정실의 공직복무점검단은 이 회장을 비롯한 관계자 8명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수사 의뢰했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이에 따라 그의 직무를 정지했다. 이기흥 회장은 직무 정지 처분에 불복하며 집행정지와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기흥 회장은 국가대표 선수촌 직원 채용 과정에서 부당한 지시로 자녀의 친구를 채용했다는 의혹, 후원 물품을 사적으로 사용한 횡령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유승민 전 회장의 출마 선언은 최근 체육계 전반에 퍼진 불신의 분위기 속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기흥 회장을 비롯해 박창범 전 대한우슈협회장, 강신욱 단국대 명예교수 등 여러 인물이 출마 의사를 밝혔으며, 선거는 내년 1월 14일 치러진다.
체육단체의 이 같은 변화의 흐름은 배드민턴 스타 안세영이 쏘아 올린 공에서 시작됐다. 안세영은 지난 8월 세계배드민턴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배드민턴 역사상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방수현 이후 27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하며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금메달 직후 대한배드민턴협회와 대표팀 운영 방식을 비판하며 체육계의 구조적 문제를 폭로했다.
안세영은 협회의 불합리한 지원 체계와 선수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를 지적하며 “체육이 선수만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대한체육회와 대한배드민턴협회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체육계 내부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체육 단체의 운영 방식과 리더십에 대한 국민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안세영이 촉발한 체육계 개혁의 목소리가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통해 더욱 구체화될 것인지에 국민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