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암호화폐(가상자산·코인) 투자 소득에 대한 과세를 2년 유예하는 정부 방안에 동의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1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깊은 논의 끝에 추가적인 제도 정비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다"며 과세 유예 방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내년 1월부터 시행 예정이던 암호화폐 투자 소득 과세가 2027년 1월로 미뤄지게 됐다. 이는 기존에 예정된 과세 시점이 세 번째로 연기된 결과다.
현행 소득세법에 따르면 암호화폐로 번 투자 소득 중 연간 250만 원을 초과하는 이익에 대해 22%의 세율로 소득세를 부과하도록 돼 있다. 예를 들어 1000만 원을 투자해 2250만 원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면, 250만 원을 공제한 나머지 1000만 원에 대해 220만 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유예 결정으로 과세는 최소 2026년 말까지 시행되지 않게 됐다. 이에 따라 암호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세금 부담 완화에 대한 환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당초 과세를 예정대로 진행하되 공제 한도를 25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대폭 상향하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과세 유예를 주장하며 의견 차이를 보였고, 결국 민주당이 정부안을 받아들이며 합의점을 찾았다. 이번 결정에는 정치적, 정책적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민주당은 암호화폐 과세 문제의 주요 대상층인 청년층의 반발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는 약 778만 명으로 추정되며, 이 중 30대 이하가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특히 이들 중 다수는 주식에 대한 금융투자소득세가 유예된 상황에서 암호화폐에만 과세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젊은 층의 주요 자산 증식 수단을 제한하는 조치로 비춰질 수 있어 민주당에게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또한 암호화폐 시장의 제도적 미비도 주요 요인으로 지적된다. 국내 거래소에서의 거래 정보는 국세청이 비교적 쉽게 취합할 수 있지만, 해외 거래소에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한 과세 체계는 아직 완비되지 않았다. 정부는 주요 48개국 간의 암호화폐 소득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협정이 2027년에 발효될 예정임을 고려해 과세 시점을 조정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국제적 제도 정비가 완료되기 전에는 국내외 투자자 간 과세 형평성을 맞추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 과세 유예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정무적 판단도 이번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앞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결정에서도 비슷한 논리를 내세운 바 있다. 그는 당시 "원칙적으로는 과세가 맞지만, 시장 상황과 투자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암호화폐 과세 유예 결정 역시 청년 투자자와 중도층을 겨냥한 외연 확장 전략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이러한 행보가 민주당의 정체성과 원칙을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당이 기본소득, 기본사회와 같은 정책적 기조를 강조하면서도 감세에 나서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암호화폐 과세에 대한 접근은 나라마다 차이가 크다. 미국은 암호화폐를 1년 미만 보유한 경우나 연 소득이 일정 기준을 초과할 경우에만 과세하며, 독일도 단기 보유에 한해 세금을 부과한다. 인도는 거래에 따른 세금을 강하게 부과하는 대신 장기 보유에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기도 한다. 반면 싱가포르와 스위스는 암호화폐를 자본이 아닌 서비스로 간주해 투자 소득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아랍에미리트 역시 유사한 접근법을 취하며, 암호화폐 시장 활성화를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번 과세 유예 결정으로 암호화폐 시장의 혼란은 다소 완화될 전망이다.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 제기됐던 해외 거래소로 자금이 유출될 가능성도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업비트 등 주요 거래소는 이번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유예 기간 동안 투자 환경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과세 유예가 장기적으로 시장 규제와 제도 정비라는 과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기여할지는 미지수다.
2027년으로 예정된 과세 시행 시점까지 정부와 국회는 제도 보완에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암호화폐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규제와 정보 공유 체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과세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유지하면서 시장의 성장을 동시에 도모하는 것이 과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