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한축구협회의 시스템 붕괴와 한국 축구의 퇴보를 막기 위해 나섰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출마는 내년 1월 8일 예정된 제55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를 겨냥한 것으로, 그는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첫 후보다.
허 전 감독은 "한국 축구는 지금 깨끗하지도 투명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며 축구협회의 문제를 지적했다. 독단적 운영 체계와 불투명한 행정이 축구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축구 팬들의 비판과 내부 갈등을 언급하며 "책임감과 의무감에서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허 전 감독은 선수 시절 국가대표로 104차례 A매치에 출전하며 한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후 지도자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끌며 명성을 얻었다. 지도자 생활을 마친 후 행정가로 변신해 2013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2015년 프로축구연맹 부총재를 역임했고,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축구협회는 전임 회장들의 헌신으로 발전했지만, 불투명하고 미숙한 행정과 잘못된 관행이 협회의 위상을 크게 떨어뜨렸다"고 비판했다. 이어 축구계를 살리기 위해 ‘동행’, ‘공정’, ‘균형’, ‘투명’, ‘육성’을 주요 키워드로 제시하며 개혁을 약속했다.
특히 그는 투명하고 공정한 협회 운영, 체계적 지도자 육성 시스템 구축, 여자축구 경쟁력 향상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역협회의 자율성 보장과 축구 꿈나무 육성에도 중점을 두며, 한국 축구의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허 전 감독의 출마 선언은 홍명보 감독 선임 논란과 정몽규 회장의 행정 운영 문제로 축구협회가 큰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축구협회 노조는 성명을 통해 "정몽규 회장의 불출마 선언이 위기 극복의 첫걸음"이라며 개혁을 촉구했다. 정 회장은 아직 4선 도전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허 전 감독은 "가시밭길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겠다"고 다짐하며 한국 축구의 재도약을 향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다음은 허 전 감독이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출마를 발표하며 밝힌 출마의 변 전문이다.
대한민국 축구 새로운 100년을 생각합니다.
- 허정무,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 출마하며 -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바쁜 일정에도 관심을 갖고 참석해 주신 언론인 여러분.
그리고 오늘도 대한민국 축구 발전을 위해 수고하고 묵묵히 땀 흘리는 축구인 여러분! 저는 오늘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축구는
2002년 월드컵 유치와 4강 신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원정 첫 16강!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그리고 지난 카타르 월드컵 16강이라는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 축구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 무대도 밟아보지 못한 채 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깨끗하지도, 투명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합니다. 대한축구협회의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운영체계는 급기야 시스템의 붕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축구 팬들의 질타와 각계각층의 염려, 무엇보다도 선후배 동료 축구인들의 갈등을 눈앞에서 지켜볼 때는 한없이 괴로웠습니다. 어쩌다 대한민국 축구가 이렇게까지 되었나 하는 한탄과 함께, 축구인의 한사람으로서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들께 죄송할 뿐이었습니다.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모두가 축구협회의 환골탈태를 바라지만, 거대한 장벽 앞에서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더 이상 방관자로 남지 않기로 했습니다. 누군가는 이 추락을 멈추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우리 축구를 다시 살려내는데 작은 밀알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돌아보면, 그동안 대한축구협회는 오랜 기간 전임 회장님들의 헌신과 노력을 통해 많은 발전을 이룬 것도 사실입니다. 전임 회장님들께서 개인적인 헌신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대한민국 축구가 성장하고 결실을 이루었으며,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불투명하고 미숙한 행정의 연속, 그리고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으려는 부끄러운 행동으로 협회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고, 대한민국 축구는 퇴보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위기와 실망을 극복하고,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동행) Open KFA, With All입니다.
열린 경영과 활발한 소통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겠습니다. 모든 의사결정 과정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수행하겠습니다. 그리고 팬들의 참여를 보장할 조직과 문화를 만들겠습니다. 디지털, AI 시대 온/오프라인 다양한 뉴미디어를 통한 소통의 장을 확대하여 MZ세대와 여성 팬을 포함한 모든 축구 팬들과 소통을 강화하고 항상 함께하겠습니다.
둘째, (공정) 시스템에 의한 투명하고 공정한 협회 운영입니다.
국가대표 감독을 포함한 지도자 선발, 선수 선발, 각종 계약 체결 등은 해당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 등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도록 하여 협회장이나 집행부의 입김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국제경험이 풍부한 축구 관계자와 각 분야 전문가들을 새로운 축구 행정 리더로 양성하여 세대교체를 이루는 징검다리가 되겠습니다.
셋째, (균형) 지역협회의 창의성과 자율성 보장입니다.
이제는 중앙의 협회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17개 시도협회에 책임과 권한을 돌려줘 지역협회 스스로 창의성과 자율성을 발휘해 운영되도록 하고, 재정자립 방안 마련도 추진하겠습니다.
넷째, (투명) 체계적인 지도자 육성 및 선임 시스템 마련하겠습니다.
축구 지도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선수 육성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절차와 시스템을 통해 장기적인 계획 아래 연령별 지도자를 육성하고 그 속에서 대표팀 감독 등 지도자를 능력에 따라 체계적으로 선임하겠습니다. 또한, 지도자와 심판들의 처우개선 방안도 마련하겠습니다. 정부 관련 부처, 금융기관 등과 협의하여 축구인복지조합을 설립하고 축구인 연금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습니다.
다섯째, (육성) 축구꿈나무 육성과 여자축구 경쟁력 향상입니다.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는 유소년 선수들에게 달렸습니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에 따라 선수 육성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유소년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할 해외거점 설립을 추진하겠습니다. 뜨거운 관심과 높아진 여자스포츠 인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여자축구리그를 활성화하고 여자축구 경쟁력을 높이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언론인 그리고 축구인 여러분! 대한민국 축구는 지금 이 순간만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미래 100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축구를 위해 제 모든 것을 쏟아부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습니다. ‘줄’은 달걀이 부화하려 할 때 알 속에서 나는 소리이고, ‘탁’은 어미 닭이 그 소리를 듣고 껍질을 쪼아 깨뜨리는 것을 말합니다.
즉, 새 새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알 속의 병아리와 바깥의 어미 닭이 함께 몸부림치며,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축구인들이 단합하고 화합하여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들과 함께 대한민국 축구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대한민국 축구가 변할 수 있고, 다시 도약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려는 이 길은 분명 가시밭길입니다. 거대한 장벽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누군가는 가야 할 길이기에 포기하지 않고 앞장서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함께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 주십시오. 여러분들과 함께 대한축구협회를 개혁하고, 대한민국 축구의 새로운 100년을 만드는 유쾌한 도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11월 25일
허 정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