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13일 개봉한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한국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실패작으로 기억된다. 감독 장선우, 주연 임은경, 김진표, 강타라는 화려한 라인업과 100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투입됐음에도 흥행과 평단 모두에서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이 영화는 개봉 첫 주 전국 관객 7만 명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손익분기점 300만 명의 관객 수에 한참 못 미치는 14만명을 동원하며 결국 2주 만에 극장에서 막을 내렸다.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대해 알아본다.
중국집 배달원인 주인공 주는 게임에 빠져 사는 청년이다. 그는 게임방 아르바이트생 희미를 짝사랑하지만, 희미는 주에게 관심이 없다. 어느 날 주는 거리에서 희미를 닮은 성냥팔이 소녀를 만나고 라이터를 구입한다. 라이터에 적힌 전화번호를 누르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접속하시겠습니까?"라는 음성이 들려온다. 주는 게임 속으로 들어가 성냥팔이 소녀를 구하고 성냥팔이 소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데….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가상현실 게임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설정을 내세웠다. 하지만 게임을 주요 소재로 삼은 영화답지 않게, 현실의 게임 문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영화는 게임 속 세계와 현실 세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그리려 했지만, 실제 게임 플레이어들이 공감할 만한 요소는 전무했다.
특히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게임을 대하는 방식은 비현실적이었다. 영화 속에서 게임은 단순히 등장인물들이 소녀를 성적으로 이용하려는 수단으로 묘사되며, 이를 통해 가상현실 게임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냈다. 또한 영화의 주된 철학적 상징인 나비와 호접지몽의 개념은 스토리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선 게임이라는 소재 자체가 의미를 잃었다. 가상현실 게임에서 벌어진 일로 보였던 사건이 PC방에서의 단순한 게임 플레이로 전환되며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는 영화의 설정과 내러티브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2000년대 초반은 한국 영화계가 IT 버블 붕괴로 인해 몰려든 막대한 자본 덕분에 성장세를 구가하던 시기였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흥행작들이 잇따라 성공하며 제작비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당초 30억 원으로 예상된 제작비가 촬영이 시작된 2001년에는 56억 원으로, 촬영이 마무리된 2002년에는 92억 원으로 늘어났다. 마케팅 비용까지 합치면 총 110억 원이 투입됐다. 지금 가치로는 200억 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하지만 장선우 감독은 이런 거액의 제작비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촬영 도중 잠적을 반복하며 제작사를 곤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제작비 상승을 우려한 제작사가 조언하자 감독은 화를 내며 제작 현장을 떠났고, 후임 감독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콘티나 촬영 일정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 같은 즉흥적인 작업 방식은 100억 원이 넘는 상업 영화에서 용납되기 어려운 게 아니냔 말이 나왔다.
제작비의 상당 부분은 늘어난 촬영 기간 동안 교체된 스태프들의 인건비로 소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영화 후반부 액션 장면에서는 초기에 투입된 홍콩 액션팀이 제작 지연으로 떠나버린 탓에 새로운 팀을 고용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액션 스타일이 충돌하며 촬영이 계속 변경됐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철학적인 세계관과 난해한 연출로 관객들의 이해를 어렵게 만들었다. 주인공 주가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이유, 그가 성냥팔이 소녀를 사랑하는 이유 등 주요 설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또한 영화의 개연성이 심각하게 결여돼 장면 간 연결이 매끄럽지 못했고, 액션 장면의 배치와 연출 역시 어색했다.
가상현실 게임이 영화의 주요 서사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도 않았다. 게임 세계 속 적을 물리치는 도구로 등장한 ‘전설의 고등어’는 오히려 영화의 진지함을 해치며 관객들을 실소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 문제에서도 큰 비판을 받았다. 여성 주연의 연기가 혹평을 받았고, 김진표는 상대적으로 무난한 연기를 보여줬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자연스러움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개봉 첫 주 전국 7만 명, 최종 관객 수 14만 명으로 기록적인 흥행 실패를 겪었다. 당시 기준으로 100만 관객을 넘겨야 ‘대박’ 소리를 듣던 상황에서 300만 관객을 들여야 했던 영화는 시작부터 무리한 목표를 설정했다.
결국 이 영화는 2002년 한 해 동안 한국 영화계 전체 적자의 20%를 차지하며 충무로의 최대 재앙으로 남았다. 100억 원을 들이고도 작품성과 상업성 모두를 잃은 흔치 않은 사례다. 당시 영화계의 무분별한 자본 투자와 제작 환경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말을 듣는다.
장선우 감독은 이 작품 이후 다시는 상업 영화를 연출하지 않았다. 그는 “금강경을 세상에 알린 것으로 만족한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남겼지만 대중과 영화계의 신뢰를 잃은 채 은퇴 수순을 밟았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기에 등장한, 거품과 허점이 뒤섞인 실패작으로 기억된다. 이 영화는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됐음에도 감독의 부족한 이해와 무책임한 태도가 어떻게 작품의 완성도를 망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영화계에선 그 누구도 장선우 감독이 이 같은 망작을 만들지 예상하지 못했다.
장선우 감독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으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추구한 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다. 1952년 출생한 그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며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초기에는 다큐멘터리 제작과 시나리오 작업을 통해 실력을 쌓았으며, 1980년대 중반 영화 연출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우묵배미의 사랑', '경마장 가는 길', '꽃잎', '거짓말'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사회적 이슈와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심도 있게 다루며,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특히 '꽃잎'은 광주 민주화 운동의 아픔을 다룬 작품으로, 한국 영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장선우 감독의 영화는 종종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거짓말'은 노골적인 성적 표현으로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모았으며, 표현의 자유와 검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며 한국 영화의 경계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