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는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낮고, 반대로 치매 환자는 암에 걸릴 가능성이 낮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6일(현지시각) 영국 언론 매체 가디언은 국제학술지 '알츠하이머병 예방 저널'에 발표된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대(ICL) 연구진의 논문을 바탕으로 이와 같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뉴욕의 한 정신과 센터 연구원들은 수십 년 전 암과 알츠하이머병 사이의 흥미로운 관계를 발견했다.
그들은 부검 결과, 암과 알츠하이머병 사이에 반비례 관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학계는 이 결과를 생존 편향으로 인해 축소 평가했다. 즉, 암 병력이 있는 사람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만큼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올해 7월 발표된 ICL 연구진의 논문은 60세 이상 영국인 300만 명 이상을 평균 9.3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를 담고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암 생존자는 암 병력이 없는 사람에 비해 연령 관련 치매에 걸릴 위험이 25% 낮았다. 전립선, 대장, 폐, 유방과 같은 가장 흔한 유형의 암에서도 연관성이 관찰됐다.
켄터키대 알츠하이머병 연구센터의 에린 애브너 교수는 "암과 알츠하이머병의 관계가 매우 흥미롭고 지속적"이라며 "암에 걸린 사람과 뇌의 아밀로이드 단백질 병리 수준이 낮은 것 사이에 일관된 연관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아밀로이드 단백질 병리 수준이 높은 것은 알츠하이머병의 특징이다.
다만, 반비례성은 알츠하이머병에만 국한되고 일반적 치매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치매 환자의 대부분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
한편, 브리검여성병원의 제인 드라이버 교수는 65세 이상 참가자 1278명을 대상으로 평균 10년간 추적 조사했다.
2012년에 발표된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암 생존자는 암 병력이 없는 사람에 비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33% 낮았다.
또한, 한국에서의 연구에서도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치매가 없는 환자에 비해 전체 악성 종양에 걸릴 확률이 37% 낮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탈리아 북부에 사는 100만 명 이상의 주민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영국에서 연구를 이끈 ICL의 엘리오 리볼리 교수는 "결과가 반복해서 복제됐으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제 반비례 관계가 실제처럼 보인다고 믿고 있다"며 "다음 단계는 이 현상의 배후에 있는 생물학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연구자들은 암 치료 자체가 치매 위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추론했다. 최근 몇 년간 알츠하이머병의 발병과 진행에서 염증이 중심 과정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화학요법이 염증을 억제하여 신경세포를 보호할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이다.
그러나 리볼리 교수는 "반비례관계가 양방향이라는 사실이 두 질병 그룹에 서로 반대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ICL 연구진은 수백 개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암 위험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는 유전자 유형을 확인했으며, 이 유형이 치매 위험 감소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리볼리 교수에 따르면 특정 유전적 요인이 조직 재생에 관여할 수 있다고 한다.
암은 통제되지 않은 세포 성장과 관련이 있는 반면, 치매는 과도한 신경 세포 사멸과 관련이 있다. 이에 대해 한국과학기술원(KIST) 서울연구소의 박미경 박사는 최근 암과 신경퇴행에서 역으로 작용하는 분자 메커니즘에 대한 리뷰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