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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날두 잠갔지만...” 챔스 준결승 1차전, 레알에 역전패당한 뮌헨

이하 게티이미지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레알 마드리그가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지난 25일(이하 현지시각) 독일 뮌헨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 간 유에파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이 펼쳐졌다. 레알은 원정 경기에서 2대1로 뮌헨에 역전승을 거뒀다.뮌헨은 경기를 유리하게 풀었다. 패스 숫자, 슈팅 회수 모두 레알에 앞섰다. 상대 팀 에이스 호날두를 꽁꽁 묶어내며 압도적인 모습을 펼쳤다. 전반 28분 하메스 로드리게스 패스를 받은 오른쪽 풀백 조슈아 키미히가 오른발 슈팅으로 깔끔하게 골로 연결했다.레알 마드리드는 전반 44분 뮌헨 문전에서 애매하게 연결된 공을 마르셀로가 하프발리 슈팅으로 연결해 동점 골을 넣었다.???? Bayern Munich vs Real Madrid | Marcelo (GOAL) 44' pic.twitter.com/NyzBx8br7Y— UEFA ★ D9INE (@CY_STADIUM_9) 2018년 4월 25일 후반 22분 이스코를 대신해 교체 투입된 아센시오가 역전 골을 넣었다. 상대 실수로 역습에 나선 절호의 찬스에서 깔끔하게 골을 넣었다.Marco Asensio Goal make Real Madrid CF leads 2-1 on Bayern Müenchen. pic.twitter.com/Yn6whM86x3— Effendi Sastra (@EffendiSastra) 2018년 4월 25일 뮌헨은 어떻게든 동점 골을 넣기 위해 총공세에 나섰지만 번번이 상대 수비에 막혔고 경기는 그대로 종료됐다. 뮌헨에겐 무엇보다 선발 선수 두 명이 부상으로 교체로 물러난 점이 뼈아팠다.뮌헨은 전반 8분 팀 주력 화포를 맡은 로벤이, 전반 33분은 수비수 보아텡이 부상으로 교체 아웃됐다. 공격과 수비에서 주요 선수를 하나씩 잃은 뮌헨엔 아쉬울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레알은 적지에서 소중한 원정 2골과 승리를 챙기며 3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 파란불을 밝혔다.

뮌헨, 파더보른 4-0으로 꺾고 '분데스리가 1위 도약'

[바이에른 뮌헨 - 파더보른 상대로 4-0 대승을 만들었다 / 사진=바이에른 뮌헨 공식 홈페이지] 파더보른의 돌풍을 '승격팀 킬러' 뮌헨이 잠재우다 [데일리TR=해외축구] 시즌 초반부터 승격과 동시에 돌풍을 일으키며 1위를 달리던 파더보른을 바이에른 뮌헨(이하 뮌헨)이 4-0 대승으로 장식하며 1위로 도약했다. 이날 뮌헨은 최종 4-0 스코어 뿐만 아니라 경기 내용에서도 파더보른을 압도했다. 점유율은 74대26, 패스 횟수는 844대288, 슈팅 숫자도 역시 24대6을 기록하면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괴체는 2골을 넣으면서 4-0 대승의 주역이 됐다. 뮐러 역시 1골 2도움을 기록했다. 부상에서 복귀한 로번은 무려 5회의 찬스 메이킹을 만들어냈고 알론소는 무려 153회에 달하는 패스 숫자를 기록했다. 더구나 노이어는 골키퍼임에도 불구하고 100%에 달하는 패스 성공률을 기록했다. 사실 파더보른은 시즌 초반 4경기에서 2승 2무 골득실 +5와 함께 분데스리가 1위를 달리며 승격팀 돌풍의 진원지로 떠오르고 있었다. 지난 주말 하노버전에선 공격형 미드필더 모리츠 슈토펠캄프가 분데스리가 역대 최장거리에 해당하는 83m짜리 골을 넣는 등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독일 현지에선 이러한 파더보른의 돌풍을 일컬어 '파더보른의 동화'라며 연일 호평했다. 하지만 뮌헨은 승격팀을 상대로 17연승을 달릴 정도로 승격팀에 유난히 강한 면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무리 승격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파더보른이더라도 뮌헨을 넘는 건 어려웠다. 결국 이날 경기의 승리로 뮌헨은 분데스리가 1위에 올라섰고 파더보른은 대패와 함께 4위로 하락했다.

'안방 우승' 바이에른 vs '첫 우승' 첼시

[스포탈코리아] 한준 기자= 2011/2012시즌 유럽 축구가 대단원을 남겨두고 있다. 당대 최강이라 불리던 스페인의 두 거함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무찌르고 ‘별들의 전쟁’의 피날레에 선 바이에른 뮌헨(독일)과 첼시(잉글랜드)가 20일 새벽 3시 45분(한국시간) 독일 푸스볼 아레나 뮌헨에서 격돌한다. ▲ 안방 우승이냐, 사상 첫 우승이냐 바이에른과 첼시의 결승 대결은 UEFA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처음이다. 통산 4회 우승을 차지한 전통을 자랑하는 바이에른은 안방에서 결승전을 치른다. 결승전 개최팀이 결승전에 오른 것은 유러피언컵을 포함하면 이번이 네 번째다. 1992/1993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로 대회가 개편된 이후로는 처음이다. 결승전 개최 팀은 역대 세 차례 결승전 중 두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1957년 레알 마드리드와 1965년 인터 밀란이 유럽 챔피언이 됐고, AS 로마는 1984년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해 리버풀에 우승을 내줬다. 바이에른은 UEFA 챔피언스리그 개편 이후 처음으로 안방에서 빅 이어(Big Ear) 트로피를 들어 올리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첼시는 아직 유럽 챔피언에 등극한 경험이 없다. 2003년 첼시를 인수한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프리미어리그, FA컵, 칼링컵을 섭렵했지만 숙원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지 못했다. 아브라모비치가 첼시 인수를 결심했던 것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관전한 직후 인 것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승부차기로 우승컵을 내줬던 2008년 이후 4년 만에 통산 두 번째 결승 진출에 성공한 첼시가 사상 첫 우승으로 ‘블루 레벌루션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 역대 전적은 첼시가 우세...드로그바, 램파드 건재 바이에른과 첼시는 2004/2005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마주친 바 있다. 당시 주제 무리뉴 감독이 지휘했던 첼시는 펠릭스 마가트가 이끌던 바이에른을 골 득실차로 제치고 준결승 티켓을 거머쥐었다. 양팀은 모두 자신의 안방에서 승리했다. 첼시는 런던에서 4-2 완승을 거뒀고, 원정에서 2-3으로 석패했다. 승리의 주역은 두 경기에서 모두 득점한 공격수 디디에 드로그바와 ‘미들라이커’ 프랭크 램파드였다. 두 선수 모두 아직까지도 현재 첼시 전력의 중심에서 활약 중이다. 첼시는 이밖에 골키퍼 페트르 체흐, 레프트백 애슐리 콜 등이 이번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반면 바이에른은 당시 경기에 뛰었던 선수들 중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유일하게 이번 경기에 나선다. ▲ 로번, 친정팀과 연속만남...유종의 미를 꿈꾸는 디 마테오 바이에른의 특급 윙어 아르연 로번(대회 4득점 2도움)은 레알 마드리드와 준결승전에 이어 첼시와 결승전에서 만났다. 두 팀 모두 로번이 몸 담고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친정팀이다. 레알 마드리드를 울린 로번은 첼시를 상대로도 비수를 준비하고 있다. 폭발적인 드리블링과 송곳 같은 왼발 슈팅 능력을 갖춘 로번은 프랑크 리베리(대회 5도움), 마리오 고메스(대회 12득점)와 함께 올 시즌 가장 막강한 공격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첼시는 근래 들어 가장 험난한 시즌을 보냈다. 2011/2012시즌 프리미어리그를 6위로 마친 첼시는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을 위해 반드시 우승을 차지해야 한다. 시즌 도중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감독이 경질되며 추락을 거듭하던 첼시를 수습한 것은 로베르토 디마테오 감독 대행이다. 첼시에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한 이탈리아 출신 디 마테오는 MK 돈스와 웨스트 브롬 감독을 맡아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첼시의 감독 대행으로 감격의 결승 진출을 이룬 디마테오는 올시즌을 끝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디마테오가 우승컵을 들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 수비진 구멍난 양 팀...승부의 열쇠는 골키퍼의 손에 준결승전에서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를 만나 혈투를 벌인 첼시와 바이에른은 큰 전력 누수 속에 결승전을 치른다. 첼시는 수비진이 붕괴됐다. 퇴장을 당한 주장 존 테리를 비롯해 풀백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 중앙 미드필더 하울 메이렐레스와 하미리스가 경고 누적으로 방에른전에 뛸 수 없다. 바이에른 역시 적지 않은 공백이 있다. 센터백 홀거 바트슈투버와 레프트백 다비드 알라바, 미드필더 루이스 구스타보가 경고 누적으로 나서지 못한다. 브레누는 일찌감치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다니엘 판부이텐도 부상에서 회복했으나 정상 컨디션이 아니다. 첼시와 마찬가지로 수비가 흔들리고 있다. 양 팀 모두 주전 수비진이 흐트러진 가운데 골키퍼들의 손에 승부에 열쇠가 쥐어졌다. 샬케0에서의 활약으로 독일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 마누엘 노이어는 준결승전 승부차기에서 눈부신 선방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무리뉴를 무릎 꿇렸다.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골키퍼 페트르 체흐 역시 바르셀로나의 파상공세를 저지하며 실력을 증명했다. 두 철벽 수문장의 선방 행진이 승부처에 흐름을 바꿀 것이다. ※ 예상 선발 라인업 바이에른(4-2-3-1): 노이어(GK) - 람, 티모시축, 보아텡, 콘텐토 – 슈바인슈타이거, 크로스 – 로번, 뮬러, 리베리 – 고메즈 /감독:하인케스 첼시(4-3-3): 체흐(GK) - 보싱와, 케이힐, 다비드 루이스, 애슐리 콜 – 미켈, 램파드, 에시엔 – 칼루, 드로그바, 마타 /감독:디마테오 사진=ⓒBPI/스포탈코리아

독일 분데스리가의 '마지막 자존심' 바이에른 뮌헨

[피치액션 l 안경남]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리그를 떠올려 보자. 축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축구 클럽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독일 리그를 떠올려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분데스리가에서 떠오르는 팀은 이 팀뿐이다. 독일 축구가 ‘전차군단’ 이라는 칭송을 얻으며 세상을 호령했을 때, 그리고 독일 분데스리가가 유럽을 점령했었던 바로 그 때, 중심에는 이 팀이 있었다. 또한 ‘녹슨 전차’ 라는 비아냥거림 속에서도 꿋꿋하게 독일 축구의 부활을 꿈꿀 수 있게 한건 바로 이 팀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12만 명의 충성도 높은 회원들과 독일 전역에 수많은 팬들의 바람을 담아 독일 축구를 이끌고 있는 분데스리가의 ‘마지막 자존심’ 바이에른 뮌헨을 소개한다. 독일 1부 리그 우승 21회: 1932, 1968/69, 1971/72, 1972/73, 1973/74, 1979/80, 1980/81, 1984/85, 1985/86, 1986/87, 1988/89, 1989/90, 1993/94, 1996/97, 1998/99, 1999/00, 2000/01, 2002/03, 2004/05, 2005/06, 2007/08 독일 컵대회 우승 14회 : 1957, 1966, 1967, 1969, 1971, 1982, 1984, 1986, 1998, 2000, 2003, 2005, 2006, 2008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4회: 1974, 1975, 1976, 2001 UEFA컵 우승 1회: 1996 UEFA 컵위너스 컵 우승 1회: 1967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회 : 1976, 2001 ▲ 분데스리가의 탄생과 함께한 바이에른 뮌헨 독일 남동부에 위치한 바이에른 주의 수도 뮌헨을 근거지로 한 바이에른 뮌헨은 같은 연고지를 사용하는 1860 뮌헨의 창단(1869년)보다 정확히 40년 늦은 1900년 2월 27일에 탄생했다. ‘뮌헨 체조클럽’의 열성적인 축구광들의 주도로 탄생한 바이에른 뮌헨은 훗날 독일 축구와 분데스리가를 이끌어가는 강팀이 된다. 100년을 넘긴 역사가 짧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독일 내에서 바이에른 뮌헨보다 오래된 클럽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시 말해 바이에른 뮌헨이 지금의 명성을 얻은 것은 순전히 실력으로 일군 업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창단하자마자 그들이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다. 바이에른 뮌헨이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1902년에 시작된 독일 1부 리그가 1963년 ‘분데스리가’로 재편되면서 부터였다. 바이에른 뮌헨은 1963/64년 시즌부터 2005/06년 시즌까지 총 41시즌 동안 분데스리가 1398경기 중 785승 329무 284패라는 엄청난 성적을 기록했다. 승률 2위 함부르크가 43시즌 동안 611승을 거두는데 그쳤으니 실로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덧붙여 홈경기에서의 기록은 더욱 놀라운데 669번의 경기에서 512승 120무를 거두는 동안 고작 67번의 패배를 기록했을 뿐이다. ‘잘 나간다’ 는 각 리그의 정상급 클럽들에게는 적어도 한 번쯤 침체기가 찾아온다. 바이에른 뮌헨 역시 침체기가 있었고, 그 침체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으며 또 길었다. 1900년 클럽 창단 이후 1909년 첫 타이틀을 차지한 바이에른 뮌헨은 1926년 독일 남부 챔피언십 우승으로 명문 클럽을 향한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했다. 1931/32 시즌 바이에른 뮌헨은 바이에른 주 클럽 최초이자 팀 창단 후 처음으로 1부 리그 정상에 오르면서 정상궤도에 오르는 듯 했다. 하지만 1933년 독재자 히틀러가 독일 수상에 오르면서 순탄한 항해를 시작하려던 바이에른 뮌헨의 돛은 꺾여 버렸다. 당시 바이에른 뮌헨의 구단주와 감독이 모두 유대인이었기에 구단에서 쫓겨났으며 한 동안은 ‘유대인 클럽’ 이라는 외부의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이어 찾아온 2차 세계대전과 흩어져 버린 팀의 재건 등으로 1950년대까지 B.뮌헨은 암흑기를 지낼 수밖에 없었다. ▲ '젊은 뮌헨' 다시 항해를 시작하다. 기나긴 암흑기를 거친 바이에른 뮌헨은 1960년대 빌헬름 노이데커 구단주와 함께 새로운 변신했다. 변신의 시작은 유고슬라비아 출신인 즐라트코 차이코프스키 감독의 영입이었다. 차이코프스키 감독은 ‘젊은 뮌헨’이라는 모토 아래 422경기 연속출장의 대기록을 남긴 ‘철인’ 골키퍼 제프 마이어,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 호나우도가 경신하기 전까지 월드컵 통산 최다골(14)을 보유했던 ‘골 머신’ 게르트 뮐러까지 20대 초반의 청년들과 함께 바이에른 뮌헨의 항해는 다시 시작됐다. ‘젊은 뮌헨’의 항해는 순조로웠다. 분데스리가 첫 출전인 1965/66시즌 3위의 성적과 컵 대회 우승, 그리고 컵 대회 우승팀 자격으로 이듬해 출전한 ‘컵위너스컵’의 우승으로 유럽과 독일 무대를 평정했다. 1967/68시즌을 끝으로 차이코프스키 감독에게 지휘봉을 물려받은 브란코 제벡은 공격적인 성향의 팀 컬러로 변화를 꾀하며 바이에른 뮌헨의 상승세를 이어갔다. 제벡 감독은 단 13명의 선수를 가지고 1968/69시즌 분데스리가와 컵 대회 동반우승을 일궈냈고, 분데스리가 출범 후 첫 ‘시즌더블’의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순조롭긴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족했던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의 명장 우도 라텍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바야흐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총8번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3대 메이저대회’인 챔피언스리그(바이에른 뮌헨)-UEFA컵(보루시아MG)-컵위너스컵(바르셀로나)를 모두 차지한 명장인 라텍은 파울 브라이트너와 울리 회네스 등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다. 바이에른 뮌헨은 1970/71시즌 컵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1971/72시즌부터 리그 3연패의 대기록을 일궜으며 1973/74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바이에른 뮌헨은 1970/71시즌 101골 38실점으로 역대 최다 골과 최대 득실 기록하기도 했으며 1972/73 시즌 홈 16경기 연승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대기록이다. ▲ '명장' 우도 라덱과 '황제' 베켄바워의 컴백 리그 3연패라는 화려한 기록을 끝으로 바이에른 뮌헨의 지도자 라텍은 디트마르 크라머에게 지휘봉을 넘겨줬다. 1992년 올림픽에서 한국을 이끌었던 크라머는 리그 3연패보다 더 큰 업적을 쌓았는데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연속 2회 더 추가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라텍에서 크라머로 이어지며 명가의 입지를 쌓아가던 바이에른 뮌헨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베켄바워와 뮐러의 이적과 마이어의 교통사고 등 팀 내 주축 선수들의 부재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팔 체르나이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며 바이에른 뮌헨은 다시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1979~81시즌 2연패와 함께 1981/82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것. 하지만 성적과는 관계없는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체르나이 감독은 독선적이고 기이한 행동으로 지도부와의 마찰을 야기했고, 바이에른 뮌헨의 스폰서들이 클럽과의 인연을 하나씩 끊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팀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바이에른 뮌헨은 ‘명장’ 라텍 감독을 다시 불러들이기로 결정했고, 다시 만난 라텍 감독을 필두로 한 B.뮌헨은 1984/85시즌부터 두 번째 분데스리가 3연패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1980년대 말 분데스리가 3연패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던 바이에른 뮌헨은 급기야 1991/92시즌 리그 10위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겪는다. 화려했던 지난날과는 너무도 비교되는 리그 10위의 성적표를 받고 나서 바이에른 뮌헨은 토마스 헬머, 조르징요, 마테우스, 메메트 숄 등의 선수들을 수혈했다. 더불어 감독 교체 역시 이뤄졌는데 ‘젊은 뮌헨’을 이끌었고, 1990년 월드컵에서 서독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베켄바워가 그 대상이었다. 베켄바워는 바이에른 뮌헨 후배들과 함께 1993/94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4년 7월 클럽의 구단주가 되었다. 구단주로써의 베켄바워의 첫 번째 선택은 분데스리가 최초의 이탈리아인 감독 지오바니 트라파토니였으며 이어진 그의 선택은 독일 최고의 카리스마 수문장 올리버 칸 이었다. 바이에른 뮌헨의 선수였으며 감독이었고 구단주인 베켄바워는 2006년 98.2%의 압도적인 지지로 5번째 연임을 확정지으며 바이에른 뮌헨의 변치 않는 사랑을 확인했다. ▲ '꿈의 무대' 복귀 그리고 분노의 영입 바이에른 뮌헨은 1998년 오트마르 히츠펠트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세 번째 분데스리가 3연패를 달성한다. 더불어 2000/01 시즌에는 25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바이에른 뮌헨을 ‘꿈의 무대’ 주인공으로 복귀시켰으며, 2002/03시즌에는 클럽의 4번째 시즌 에는 새롭게 영입한 미하엘 발락과 함께 더블을 달성했다. 2004년 히츠펠트에게 지휘봉을 넘겨받은 펠릭스 마가트는 2004~06시즌 연속 ‘시즌 더블(연속 더블은 분데스리가 최초이다)’을 만들어냈지만 2007년 1월 성적부진을 이유로 히츠펠트에게 지휘봉을 반납해야 했다. 연속 더블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것은 사실이나 이후 부진한 성적을 이유로 감독 교체를 단행한 바이에른 뮌헨의 목표가 얼마나 높은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시즌 도중 감독 교체라는 강도를 뒀음에도 바이에른은 리그 4위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야 했고, ‘꿈의 무대’가 아닌 UEFA컵에 출전해야만 했다. 예상치 못한 추락 때문일까? 한동안 분데스리가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바이에른 뮌헨은 충격은 생각보다 심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특단의 조치가 내려졌고, 구단 수뇌부의 선택은 ‘분노의 영입’이었다. 바이에른 뮌헨은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넘버원 공격수 루카 토니와 ‘제2의 지단’으로 불리던 프랑크 리베리를 영입하며 정상 복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뿌린 만큼 거둔다고 했던가. 2007/08시즌 바이에른 뮌헨은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분데스리가를 점령했다. 이전 시즌 10패를 기록했던 바이에른 뮌헨은 시즌을 통틀어 2패만을 기록하며 2위 베르더 브레멘을 승점 10점 차로 따돌리고 일찌감치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꿈의 무대 복귀를 선언하고 새롭게 맞이한 2008/09시즌, 바이에른 뮌헨은 또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독일 3위로 이끈 위르겐 클린스만에게 새롭게 지휘봉을 맞기며 시즌을 시작했지만, 선수와 감독간의 갈등이 고조되며 후반기로 갈수록 페이스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바이에른 뮌헨은 전, 후반기 모두 1899 호펜하임과 볼프스부르크에게 밀리며 2위로 시즌을 마감했고, 그 어느 때보다 돌풍의 바람이 거셌던 분데스리가는 볼프스부르크의 사상 첫 우승이라는 드라마로 끝이 났다. 1시즌 만에 복귀한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성적도 좋지 못했다. 16강에서 스포르팅을 종합전적 12-1로 대파하고 8강에 오른 바이에른 뮌헨은 이번엔, 바르셀로나에게 1-5로 패하며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 패배로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은 보다 힘을 받게 됐고, 바이에른 뮌헨은 시즌 막판 임시 감독 체제 아래 시즌을 끝마쳐야만 했다. 반복된 충격으로 인해 바이에른 뮌헨의 행보는 또 다시 바빠졌다. 시즌 종료 직후 지난 시즌 AZ알크마르를 에레디비지에 정상으로 이끈 루이스 반할 감독을 새롭게 임명했고 아르옌 로벤, 마리오 고메즈, 아나톨리 티모슈크, 이비카 올리치, 다니엘 프라치니 등을 영입하며 두 번째 분노의 영입을 실시했다. 바이에른 뮌헨은 시즌 초반 에이스 리베리의 이적설과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해 다소 부진에 빠지긴 했지만, 반할 감독의 지휘 아래 서서히 정상 궤도를 찾아갔다. 로베리 콤비(리베리와 로벤)를 앞세워 리그 선두를 탈환하는데 성공했고, 컵 대회와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르는 저력을 선보였다. 물론 아직 바이에른 뮌헨의 성공을 단정하기엔 이르다. 트레블의 기회를 맞이했지만, 가능성만 있을 뿐 어느 것 하나 섣불리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바이에른 뮌헨이 또 한 번의 전성시대를 맞이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는 점이다. ▲ 독일 분데스리가의 '마지막 자존심'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여타 빅 리그와 견주어 독일 분데스리가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분데스리가를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이유는 분데스리가의 중심에서 언제나 바이에른 뮌헨이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후 분데스리가와 유럽 축구 무대를 평정한 바이에른 뮌헨은 지금도 그 명성과 실력을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바르셀로나, AC밀란 등 다른 나라의 어떤 강팀이라 할지라도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할 때는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분데스리가의 자존심 바이에른 뮌헨의 힘이며 이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독일 축구 역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다가올 내일에도 언제나 분데스리가와 독일 축구의 자존심을 지켜나가는 꿋꿋한 팀, 그 팀이 바로 바이에른 뮌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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